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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몰의 시작 #36] 산티아고 대성당의 위엄은 실로 대단했다
지적으로 알았어도 행동하고 반응하고 순종하는 일은 어려웠다. 예전 삶과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문제였다. 그리고 괴로웠다. 나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대답이 필요했다. 새로운 상실감이었다.
편집자 주: ‘일몰의 시작’ 30장 I.N.R.I. 31장 철학자의 돌은 향후 출간될 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32장 순례자의 귀향부터 다시 연재합니다.

별들의 은하수가 지상 위에 뿌려졌다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스페인의 순례자의 길(Pilgrim`s way)의 최종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도시다. 이곳은 헤롯왕에 의해 첫 번째 순교자가 된 야보고(Saint James)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으로 중세 시대부터 순례자들은 야고보를 기리며 이 길을 걸었다.
학부 4학년, 23살 졸업반이 된 난 지난 여름방학 동안 약 800km의 길을 40일간 걸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이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세계 3대 성지로 알려진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참회할 필요가 있었다. 죄가 깊으면 은혜가 깊다고 했듯이 내겐 참회를 통해 은혜를 구하는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기독교철학을 공부하면서 내 지적 구조는 달라졌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체계를 가질 수 있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구분이 가능해졌다. 정의와 지혜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커졌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것들은 내 삶까지 바꾸는 데 역부족이었다. 지적으로 알았어도 행동하고 반응하고 순종하는 일은 어려웠다. 예전 삶과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문제였다. 그리고 괴로웠다. 나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대답이 필요했다. 새로운 상실감이었다. 한 달 전에 비행기를 타고 먼 이국, 스페인 땅까지 오게 되었다. 연초에 텔레비전에서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엘류가 이 길을 걷는 다큐를 보게 된 순간부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선미는 내내 걱정했다. 두 살 아래의 과 후배로 만나 지난 3년 동안 사귀어왔다. 그녀는 내 과거를 알고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간을 존중했으며 사랑했다. 나를 읽어줄 줄 알았다. 영혼이 닮은 여자였다. 과거 버릇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술에 취해 욕하거나 아무나 붙잡고 싸움하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서 나를 호되게 혼냈다. 난 선미의 왜소하지만 밝고 쾌활한 모습에서 첫 번째 진아의 모습을 봤고,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두 번째 진아의 모습을 봤다. 단호하고 침착하게 나를 나무랄 때는 마지막 진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미는 진아들의 삼위일체와도 같았다.

남부 프랑스의 도시 생 장 피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걸으면서부터 고난의 길은 시작됐다. 매일 25km 이상을 걷고, 오후에는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도 만났다. 두꺼운 수도사복을 입고 순례하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소속의 수도사들도 만났다. 중간에 로그로뇨(Logrono)라는 도시에서는 한 성당에서 머물렀는데 수사들과 함께 생활하고 예배를 하면서 그곳에 계속 머무를까 하는 유혹 아닌 유혹도 받았다. 순례의 길에서 만난 우리는 함께 밥을 나누고 서로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길을 떠났다. 오랜 도보와 산행으로 무릎뼈는 튼튼해졌고 몸무게는 10kg 이상 빠졌다. 문어 요리인 뿔뽀와 올리브 열매를 재어 술안주로 나오는 올리바, 충분한 햇빛을 받아 단물이 가득한 과일들 모두 입에 잘 맞았다. 하루에 8시간씩 매일 걷고 난 뒤에 마시는 맥주 맛은 최고였다. 맥주가 온 몸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병따개로 맥주를 딴 뒤 깨끗한 휴지로 병 입구를 닦던 진아가 생각났다. 지금 곁에 없지만 난 그녀의 행동을 반복했다. 진아가 심어준 기억과 행동들은 아직도 내 곁에 있었다. 아마도 평생 그렇게 따라할 것 같다.
순례자의 길 중간에 있는 ‘크로스 데 히데로’에 진아와의 커플링을 두고 왔다. 선미 몰래 커플링을 가지고 온 이유는 하나였다. 낯선 이 땅에서 진아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쎄, 물론 내가 그녀를 잊는다는 게 가능할까. 이미 진아는 내 영원 가운데로 들어와 있는데 말이다. 다시 만날 진아를 생각한다면 누군가를 만나서는 안 됐다. 3년 동안 선미를 가까이 하지 못한 이유였다. 결혼을 피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귀국 후에는 진아 무덤을 찾아가 순례자의 상징을 선물하며 양해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은 스스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 세계에 대해 듣지 않으려 하며 그 세계에 발붙이기를 꺼린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그리고 낯선 이곳 스페인 땅에 와서 깨달은 점이다. 영화나 소설, 만화 속에서 만난 사람들, 사상들은 분명 현실 경험 세계의 것들과 달랐다. 나를 속이지 않은 책은 오히려 신비로 점철된, 허무맹랑해 보였던 성경뿐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한다. 떠나보내는 것과 잊는 것은 다르다. 결국 나도 모두가 돼서 세상과 타협하고 순응해, 아마도 같은 얼굴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평범한 직업을 가진 가장으로 살 것이다. 진아가 그렇게 꿈꾸었던 미래를 말이다. 비겁한 일일까? 결국 나이를 먹고, 성숙해졌다고 착각하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자아의 잘못된 포기가 아닐까? 결국 쾌락의 끝을 재발견하고는 전처럼 다른 길을 떠나게 되는 건 아닐까? 수백 번도 넘게 생각했다.
진아는 나만의 내적 갈등을 예견하고 마지막으로 부탁한 건지 모른다. 나 역시 우리 삶이 실제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타투스 쿠오(Status quo), 이 모든 것은 실제 상황이다. 우리가 달나라를 여행하게 될지라도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갈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정말이지 만에 하나 외계 생명체를 만나더라도, 우리는 두려움에 떨고 밤에는 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단념하는 편이 나았다. 단념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진 참된 목적이며, 그 길만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산티아고 대성당의 위엄은 실로 대단했다. 오랜 여행으로 지친 난 여행 40일째가 되는 날 저녁에, 산티아고에 들어서면서 일몰을 봤다. 그 순간 내면의 모든 억압과 분노, 잘못된 기억과 왜곡된 소망들은 눈물과 통곡과 함께 한꺼번에 터졌다. 카타르시스, 쾌락이란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감정의 정화가 그 순간에 시작됐다. 나는 다른 존재가 됐다.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서 진짜 나는 신과 하나가 됐고, 그 음성을 들었다.
여행의 마지막에는 지구의 서쪽 끝, 피네스테레(Finesterre)에서 지상 마지막의 일몰을 볼 수 있었다. 지구 끝 일몰은 이 세상의 모든 일몰을 합친 것 같았다. 구원의 순간, 모든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영겁회귀의 시간이다. 그 일몰을 보면서 사랑했던 사람들과 재회했다. 가족과 선생님과 진아, 홍균이 형과 윤정 누나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선미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천국에 모든 소망을 둔 순례자들이다. 물론 다른 곳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도 있다. 개신교 안에서 구원이 있고 없듯이, 가톨릭 안에서도 구원이 있고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밖에서 구원을 찾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결국 무(無)다. 다른 것들이 구원을 강력히 말하지 않는다면,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국에 돌아왔다. 바쁜 일상은 반복됐고 그에 따라 수없이 쏟아지는 말들, 관계 가운데서 행해지는 수백만의 행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 어떤 사인도 없다는 것을 눈치채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티아고가 그리웠다. 단조로운 삶은 우리 생각을 명확하게 한다. 쏟아지는 다량의 정보를 전부 유입할 수 없다면 그중에 자신에게 알맞은 것을 취사하면 그만이었다.
산티아고에 다녀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9월 중순, 인디안 섬머가 계속되는 무더운 가을에 진아 무덤을 다시 찾았다. 4년 만이었다. 지혜의 생일날이기도 했다. 곁에는 선미가 있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김제역에서 택시를 갈아타 진아의 고향 집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먼저 집으로 갔지만 어머니와 지혜는 없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집 뒤뜰로 가니 무덤은 그대로였다. 선미는 자리를 비켰다. 나는 서서 기도를 한 뒤 산티아고에서 받은 순례자 증표를 꺼내 묘비 옆에 뒀다.
“진아야,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나 어때? 많이 변한 것 같아?”
물론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따듯해졌다.
“그동안 찾아오지 못해 미안해. 나 대학교에서 열심히 기독교철학을 공부하고 있어. 장학금도 많이 받았고, 교수님들께도 인정받아서 유학을 가려고 해. 진아를 위해서, 진아를 생각하며 지난여름 내내 순례의 길을 걸었어. 그곳에서 신앙도 다시 찾을 수 있었어. 진아가 원했던 대로, 나를 위해 빌어준다던 그대로 하나씩 다 하는 중이야. 기특하지? 그리고… 진아야. 이제는 정말 새로 시작하려고 해. 많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누군가와 함께 남은 생을 사는 걸 진아도 원한다고 생각했어. 진아가 그 사람을 보내줬다고 믿고. 저 뒤에 보이지? 선미라고 해. 착하고 나를 잘 이해해 주고…. 선미도 진아를 많이 보고 싶어 해.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오늘 여기 이렇게 함께 왔어. 괜찮지?”
선미는 우리 대화가 들리지 않을 만큼 떨어진 나무에 앉아서 손에 든 들꽃 향을 맡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서로를 잘 읽고 있었다. 진아가 선미에게도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잘 살게. 올해 겨울에 결혼하고 내년에 졸업해. 석사 과정 마치고 선미는 학부를 마치면 같이 영국으로 유학 가려고 해. 나 응원할 거지?”
바람이 불었다. 시원한 바람이었다. 긴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다. 김제의 광활한 평야 위로 차츰 붉은 빛이 돌기 시작했다. 진아가 이 넓은 곳에서 자유로이, 일몰의 순간을 누리며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렇게 모든 것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유학 가기 전에 꼭 다시 올게. 오늘은 지혜도 보고 가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네…. 진아야, 잘 지내고 나중에 보자. 그럼 갈게.”
선미와 함께 큰길가로 걸어 나오자 노부부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진아 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김순조 씨네? 작년에 죽었어. 쯧쯧…. 젊은 사람이 안 됐지.”
지혜 행방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 손녀딸인가 있었제. 글쎄, 우리도 듣자 하니 서울에 있는 그이 아버지한테 갔다고 하고, 잘 모르겄어. 근데 댁들은 누구인고? 보아하니 그 집 사람들 같지는 않건만.”
환갑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고 우리를 유심히 보면서 대답했다.
“그 집 딸인 진아와 친구예요.”
예전에 나는 그 집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4년 전인가 죽은 그 집 딸내미? 그렇구만…. 오늘이 기일인가?”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인사차 와 봤어요.”
“그려, 죽은 사람 잊지 않는 거 고마운 일이제.”
버스가 왔다. 노인은 버스를 타면서 ‘또 오게’라고 말했다. 우리는 인사하며 버스를 보냈다. 또 오라는 말은 진아의 사인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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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판 일 : 2018.01.10 ⓒ K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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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글 [일몰의 시작 #35] 1999년은 종말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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