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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몰의 시작 #37] H는 내 죽음이 행복한 죽음이자 구원받는 자살이라고 했다
태양과 달은 함께 하늘 위에 떠 있다. 조금만 움직이면 깊은 바다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날씨 변화는 없었다. 새들은 여전히 하늘을 날았고 의외로 많은 말들이 곳곳을 뛰어다녔지만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들은 아직 우리가 겁을 먹을까 봐 숨어있다고 한다.
‘만일 내가 “어두움이 확실하게 나를 숨겨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해도, “빛이 내 주위에서는 밤이 된다”라고 말한다 해도, 어둠이 주께는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밤이 낮처럼 빛날 것입니다. 이는 어둠이 주께는 빛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곳엔 모두가,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태양과 달은 함께 하늘 위에 떠 있다. 조금만 움직이면 깊은 바다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날씨 변화는 없었다. 새들은 여전히 하늘을 날았고 의외로 많은 말들이 곳곳을 뛰어다녔지만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들은 아직 우리가 겁을 먹을까 봐 숨어있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집도 그대로였다. 몇몇은 가족 중 일부가 “따라오지 않았다”라며 걱정했다. 내 부모님과 친척들, 홍균이 형과 윤정이 누나가 생각났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들이 곧 따라오기 때문이 아니라 걱정에서 좀 더 멀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는 연옥이라고 하고 누구는 천국의 골짜기라고 하는 그곳에서 일몰을 찾아봤지만 도무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태양이 있다면 일몰도 있어야 했지만, 이 태양은 결코 지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들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자나요?”
지구에서 북극의 밤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사방에 있어서 질문하면, 하나의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가 대답하는 식이다. 어두움과 빛이 우리 생활을 방해하는 것 같이 느끼며 살아왔지만, 이곳에서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과거에 알던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나요?”
대답은 간단했다. 아니라고 누군가 대답한다. 지상에서처럼 이곳에서도 우리는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산다고 한다. 하지만 지상 공간과 달리 시간 개념이 빠졌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외부 존재의 순간 이동이 가능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각자의 공간과 시간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나니아의 옷장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여행할 기회가 생기거나 몇 개의 세계가 더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 새로 관계 맺는 사람들과는 하나의 공간 가운데서 시간 제약 없이 평생을 교제한다고 한다. 천국에서 동창회가 열리길 기대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어떻게 찾죠?”
기다리면 된다고 한다. 기다리면,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다시 만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모든 오해와 불신은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들이 모여 새로운 관계, 전적으로 타자들을 위해 살아가는 완전한 인격이 된다고 한다. 안에 있는 것을 꺼내놓지 않으면 다시 죽게 된다고, 우리에게 남은 건 기억과 타자와의 관계뿐이라고 한다. 미묘하게 양심을 버리고 타협하고 속물이 된 친구들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그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첫사랑인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보고 싶었다. 결혼은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보고 싶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내게 속삭였던 그 많은 말, 그 많은 표현은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봐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 마음이 남아있는 한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한다.
진아와 은정이, 찬이를 다시 만난다면 사실 그들에게 아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두렵다. 우리는 서로를 잊었을지 모르니까. 그저 이름만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 마음이 남아있다면,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 것이라 한다.
검정고시를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 선생님들, 홍균 형과 윤정 누나, 세희와 용욱이를 다시 만난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 이후에 그들 소식을 가끔 들었었다. 그들에게서 직접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싶다. 홍균이 형에게 감사하다고 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저세상에서 빚진 사랑은 그곳에서 모두 끝났다고 한다. 아마 그들 중 대다수는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건 부정의 하거나 부당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유한하며 고통스러운 삶은 지상에서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진이와 재형이, 간담, 상미를 다시 만나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영이와 미진이, 숙희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세아와 수미에게는? 숙희를 사랑했지만 마지막에 우리는 아무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 서로 그런 것이다. 나영이의 놀란 눈을 어떻게 볼 수 있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진아 혹은 선미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이곳에서 정말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할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한다. 불멸의 존재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원한다면 ‘섹스’도 가능하다. 어른도 가끔은 초콜릿을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콜릿’ 그 자체는 없다고 한다. 하나님은, 지상에서 24시간 계속되는 인간들의 섹스를 보는 분이 아니라고 했다. 섹스, 새로운 관계, 함께 사는 것 모두 다른 것들로 통일된다고 한다. 우울한 일이지만 더 좋은 것이 있다는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니 그럴 수밖에.

H가 남았다.
이 모든 것을 H가 대답했다.
늘 곁에 있었다고 한다. 믿기 힘든 일이다. 왜곡된 기억이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는 저곳에서 이미 H를 잊었을 뿐만 아니라 H를 전혀 몰랐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은 엄연히 존재한다고 한다. H는 내 곁에 있었고, 지켜줬으며, 이곳으로 이끌어 준 장본인이라고 한다. 진아도, 선생님도, 숙희도 모두 H가 만나게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말에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했다. 그러시라고, 이미 나는 자아가 없는 존재, 사람이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H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그윽하게 쳐다봤다. 그게 내가 잠시 본, H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 모든 기억은 순수한 기억으로 남아 영원하게 된다. 나는 언제 이곳으로 오게 됐을까? 다시 찾아간 피네스테레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H는 내 죽음이 행복한 죽음이자 구원받는 자살이라고 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저곳에서 내려왔다. 경험은 내가 했지만, 결국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너무 오래 생각하고, 너무 오래 걸어왔다. 그만 쉬고 싶다.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이제 쉴 수 있을 것이다. <끝>

by 이준 -Copyrights ⓒ말산업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 판 일 : 2018.01.11 ⓒ K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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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음   글 [일몰의 시작 #마지막] “하루 시작은 일몰 때부터다”
이   전   글 [일몰의 시작 #35] 1999년은 종말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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