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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여자가 대통령이다] #18 “자기기만에 빠진, 질릴 수밖에 없는 악녀예요”
“겪어 보지 않으셨습니까. 걘 그러고도 남아요. 그러면 자기는 기다렸답니까? 남편을 존중해서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닙니까? 대접받을 행동을 해야지요. 그래놓고 사랑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사랑을 받았다는 죄를 저질렀다고 핑계합니다. 남자들 시험하고 다니는 겁니다. 철없는 아내가 아닙니다. 자기기만에 빠진, 질릴 수밖에 없는 악녀예요. 그러니 어서 정신 차리세요.”
“아까 전화 드린 이영민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경용입니다.”
“연말이라 바쁘실 텐데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뭐, 아닙니다. 언젠가 찾아오실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미아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을까 해서요. 경용 씨의 생각과 느낌이 어떤지 여쭤보고자 왔습니다.”

“병이라뇨?”

“심리학을 전공하셨다니 아실 겁니다. 두 사람이 이혼 준비 당시 정신과 치료도 받은 걸 알고 있고요.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미아가 앓고 있는 병은 스스로 키운 문제도 있지만, 영적인 원인이 큽니다.”
“저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느끼고 있었습니다만….”
“소개팅으로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미아는 어땠나요.”
“소개팅이라뇨.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던가요? 아닙니다. 화상 채팅에서 만났습니다. 민망하지만 그 사람이 먼저 화상으로 가슴을 보여주며 퉁퉁하고 맨머리인 저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면서 적극적으로 접근했어요. 다음날 오프라인에서 바로 만났죠. 서수지 집 근처 카페에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매일 아침마다 강남까지 영어학원을 다니는데 차가 없어서 불편하다며 데려다줄 수 있느냐고 첫 만남부터 당돌하게 묻더군요. 뭐, 요즘 여자들 다 그렇지 않습니까. 호감이 있었고 한번 사귀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해 외롭기도 했고요. 새벽 6시마다 집에 가서 강남으로 바래다주고 두 시간을 기다려 다시 집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했지요. 주말이면 캠핑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며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1년 반 정도 연애하다가 결혼하셨다죠.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인터넷 홈페이지 관리와 앱 제작을 하는데 사진을 찍는 그 사람과 일적으로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았지요. 그 사람이 다른 건 못해도 저를 친오빠처럼 생각하며 잘 따랐습니다. 한창 연애할 때 제주도도 가고 몽골도 가고 그러다 덜컥 임신하게 됐습니다. 결혼을 해야 했죠. 허허.”

“임신이라고요?”

“만난 지 9개월쯤 됐을 때입니다. 그 일로 어머니를 찾아뵈었는데 반대하셨어요. 제가 뚱뚱하고 대머리에 게으르게 생겼다나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분이셨죠. 게다가 장남이라니까 무조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그 사람도 저를 다르게 대하더군요. 임신 3개월이었는데 혼자 아무 말 않고는 병원에 가서 낙태를 했어요.”
“처음 듣는 얘깁니다. 어떻게 다시 만났죠?”
“저도 충격을 받아서 연락을 안 했죠. 3개월 정도 지나서 제주도에 있으니 찾아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여행을 왔다며 말이죠. 일단 내려갔죠. 그 사람이 태어난 집을 보여 주고는 화해하자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를 설득해 결혼해서 제주에 와서 같이 살자고 그 사람이 먼저 말했습니다.”
“6개월이 지나 결혼하게 되는군요.”
“사실 그때가 저에겐 정말 죽음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좀 더 이성적이었어야 했는데….”
“결혼 준비가 벅찼겠습니다.”
“그 이상이었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전세는 살아야 한다며 집을 준비하라고 요구했고, 출퇴근 때 제가 데려다주는 게 부담된다며 차도 뽑아 달랬어요. 빚을 내고 집에 돈을 빌려 겨우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또 소원해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보자는 겁니다. 사랑은 서서히 달아올라야 한다면서 말이죠. 결혼 직전에는 상의도 않고 응당 해야 할 처녀 파티라며 친구와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죠. 연락도 잘 안 되고 출장이라며 며칠씩 못 보기도 했습니다. 전화를 해도 잘 안 받았고요. 저는 일 때문이니 그러겠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설마…?”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니더군요. 제가 아는 것만 3명입니다. 한 명은 삼성에 다니는 동갑 유부남이었고 한 명은 사진 찍는 후배, 마지막은 이혼한 50대 중반의 캐나다인이었습니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러다 또 놓칠까 싶어 불안했고 서로 상처 내는 일이 싫어 서둘러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하게 됐습니다.”
“신혼 첫날부터 각방을 썼다고요.”
“하와이에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집 앞 치킨집에서 맥주나 한잔 하자더군요. 그러면서 자기는 원래 4월에 결혼하고 싶었는데 내가 서두르는 바람에 날짜를 못 맞춰 3월에 했다고 원망하고는 술에 취해 진상을 부렸습니다. 그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제주도가 아니라 해외로 나가서 살 거라고 하더군요. 동양인들에게는 만족 못 한다며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 이혼한 캐나다인과 살고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 알았죠. 저를 만나면서도 그 남자와 깊은 관계까지 갔다는 거예요.
결혼 약속까지 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그래도 나를 선택해줬으니 고마워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각방을 썼죠. 한 달에 한 번 배란기가 되면 관계를 갖자고 문을 두드리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습니다.”

“다른 문제는 없었습니까?”

“왜 없었겠습니까. 저는 대출금 갚으려고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는데 한 달 평균 보름만 일하고 나머지는 쉬는 그 사람은 여행을 가자고, 새로운 이벤트를 해달라고 늘 졸랐습니다. 청소도 빨래도 거의 한 적 없고 집안 살림은 다 내팽개치고 말입니다. 화장실에는 붉은곰팡이가 피고 변기 여기저기에 분변이 묻어 있어도 남의 집처럼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변이 자기 것이니 제 것이니 하며 따지다가 화장실도 각자 쓰게 됐습니다. 청소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청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싫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가정부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쉬는 날은 문화센터, 동호회에 들어 또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더군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왔고요. 새벽까지 남자들과 통화하고 문자하는 행동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를 안고 가려고 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철이 들겠거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혼한 캐나다인과 다시 만나는 걸 알았습니다. 지방 출장을 간다고 사흘을 외박했는데 그 남자와 친구 커플과 제주도로 여행을 갔더군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도대체 이 여자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자존감마저 무너지더군요. 한국 남자들도 이제는 혼전순결에는 관대해졌지만, 혼후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참지 못합니다. 그때는 화가 너무 나서 이 여자가 이혼하기 위해 경험 삼아 결혼했구나, 나를 이용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랑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겁니다. 더 큰 사랑을 찾아 언제든 떠날 여자였죠.”

“바람을 피운 건 어떻게 알았나요?”

“사진… 사진입니다. 그 사람이 쇼핑을 갔을 때 책상 위에 카메라가 있기에 요즘은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 궁금해 열어 봤죠. 제주도 호텔에서, 바닷가에서 네 사람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봤습니다. 캐나다인과 한방에서 벗고 찍은 사진, 그 남자의 불알 사진 모두 말입니다.”
“돈 문제도 심각했다고 들었습니다.”
“이혼 결심을 하게 된 명목상 이유입니다. 제가 버는 건 족족 대출금 이자를 갚는 데 썼고 그 사람이 버는 건 생활비로 썼는데 그 돈을 그렇게 아까워했습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자고 하면 얼굴부터 찌푸리고 무조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둘만 행복하면 된다고 말이죠. 행복은 무슨 행복입니까. 그래도 참고 잘해보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주말에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사람 몰래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 드렸죠. 그 일이 발각되자 바로 이혼하자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더군요. 저도 더는 참을 수 없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최혜진이 찾아온 때가 그 무렵이죠.”
“그 여자가 그 사람을 꼬드겨서 제주도로 커플 여행을 갔었죠. 도대체 뭐하는 여자인지, 그런 것도 친구라고 만나는 건지 나 원 참. 둘 다 똑같습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걸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했더니 집에서 맥주 한 박스를 다 먹어 치우고 취한 상태에서 저를 보자고 하더군요. 혼자 횡설수설하며 남자가 그것밖에 안 되느냐고 따지더니 답답하다는 거예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이가 없어서…. 저는 한번 결정하면 결코 후회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친구를 보면 알아요. 그때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숙려 기간을 거치면서 미아가 잡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던가요? 잡기는 뭘 잡습니까? 그때 일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저보고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니냐, 행동 장애가 있는 것 같다며 같이 정신과에 가자고 하더군요. 상담하면서 파경의 책임부터 모든 걸 다 제 탓으로 돌렸죠. 의사가 오히려 그 사람의 심신불안 상태를 지적하고 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하자 다음날부터 안 가더군요. 심리학을 전공했기에 왜 그러는지는 이해합니다. 장모님 문제가 커요. 장모님은 그 사람보다 더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입니다. 혈통은 바뀔 수 없죠. 그런데도 고칠 생각을 안 하는 건 결국 당사자 문제 아닙니까. 그저 그런 핏줄로 태어나 망나니짓,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다가 모두에게 잊힐 숙명을 가진 여자라는 결론이 나자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혼을 확정하고 법원에서 나오는데 난데없이 그제야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에는 진심인 듯했어요. 걔가 남자 편력이 심한 걸 알았지만, 마지막으로 믿어보고 희망을 걸었죠. 저는 본래 독신주의자였기에 다시는 여자를 안 만날 거라고 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못 잊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걔는 또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영민 씨였죠. 솔직히 저 같은 멍청한 놈이 거짓의 그물에 또 걸려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만나는 와중에도 미아가 몇 번 찾아갔었죠.”
“영민 씨를 만나기 전까지도 매주 찾아왔었습니다. 작년 5월인가 홍콩에 가기 전에 왔고, 6월에 제주도로 갈 때 그리고 8월에 제주에서 올라올 때 만났습니다. 9월 중순에도 여기 사무실로 왔었고요.”

“이혼한 여자가 찾아오는 심리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결국 섹스예요. 안전하게 아무 때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게 저였으니까요. 사무실로 오자마자 옷을 벗고 덤벼드니까 어쩔 수 없지만, 애정이 있는 섹스는 아닙니다. 그냥 관계일 뿐입니다. 매번 제 걸 붙잡고 흐느끼면서 미안하다며 후회하고는 또 돌아가죠. 그만큼 걔는 소유욕이 강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세상 여자는 자기 하나여야 한다는 주의에요. 지금도 제 메일과 메신저 비밀번호를 캐내어 몰래 엿보고 있습니다. 흠을 잡으려는 거죠. 몇 번이고 고소하려다가 참고만 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애예요.”
“그랬군요…. 듣기로는 경용 씨가 사랑은 기다림이며 존중하는 거라고 했다고, 그 말을 중요시합니다. 경용 씨가 변했다는 투로 말이죠.”
“겪어 보지 않으셨습니까. 걘 그러고도 남아요. 그러면 자기는 기다렸답니까? 남편을 존중해서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닙니까? 대접받을 행동을 해야지요. 그래놓고 사랑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사랑을 받았다는 죄를 저질렀다고 핑계합니다. 남자들 시험하고 다니는 겁니다. 철없는 아내가 아닙니다. 자기기만에 빠진, 질릴 수밖에 없는 악녀예요. 그러니 어서 정신 차리세요.” <다음 호에 계속>

by 이준 -Copyrights ⓒ말산업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자 주
‘여자가 대통령이다’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유령이 한 나라를 집어삼킨 현재, 이 시대를 살아 내는 한 민초 여자와 동갑내기 신부 박용성, 경마 기자 이영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재소설입니다. 작가는 “간통죄가 합헌이어도, 여자는 위헌”이라며, “우리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에게, 우릴 창조한 신에게만 유죄라고 통보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습니다.

 
출 판 일 : 2017.05.17 ⓒ K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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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음   글 [여자가 대통령이다] #19 “신조차 남자로 생각해 매달리지 않는 여자입니다.”
이   전   글 [여자가 대통령이다] #17 “신은 지옥불에 뛰어들겠다는 인간 의지까지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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