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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몰의 시작 #24] “준이는 지금 거짓말하고 있어.”
“지금 여기서 더 방황해봤자 시간 낭비만 하는 거야. 기왕 시작한 공부니까 대학은 가야지. 대학 가서도 열심히 공부해야겠지만 말이야. 세상은 결국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일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던 그 아저씨는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을 불러 모아 거하게 밥을 샀다. 아직 시험이 반 이상 남았지만 이들은 해물탕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고 기분이 좋은지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한 병이면 돼요.”
“겨우 소주 한 병을 누구 입에 붙여.”
“시험 봐야죠, 아직 시험도 안 끝났는데.”
“여기 이 학생 있잖아. 우리는 그냥 열심히 베끼면 돼. 자자, 마셔요. 내가 사는 거니까.”
아저씨는 계속 술을 권했다.
“학생 덕분에 나도 이젠 합격할 것 같네그려, 고마워.”
“아닙니다. 별거 아니에요.”
받은 술잔은 내려놓고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준이가 오늘 정말 고생한다. 한 잔 받아.”
“자, 남은 시험을 위하여!”
“위하여!”
나만 믿고 답만 베끼면 되기에 마음이 편안한 걸까. 내가 오답을 적으면 어떻게 하려고. 단순할수록 믿음이 좋다지만 이건 분명한 맹신이다. 소주를 7병 정도 더 마시고 나서 점심시간이 끝날 때야 우리는 다시 교실로 향했다.
5교시 역사 시험을 이후로 상업과 미술, 생물 과목을 차례로 마치니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모두 수고했다며 기쁜 얼굴로 악수를 나눴다. 시험을 잘 봤든 못 봤든 끝났다는 거로 만족하는 삶도 그다지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학교를 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이봐, 학생! 준이 학생!”
그 아저씨였다.
“왜 그러세요?”
“고마워서. 자 여기 큰 액수는 아니지만 받아둬.”
“아니, 이러지 마세요. 안 그러셔도 돼요.”
“이래야 마음이 편해서 그렇지. 자, 여기. 오늘 수고 많았어.”
아저씨는 십만 원짜리 수표 몇 장을 내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손을 저으며 서둘러 학교를 나갔다. 부정행위에 대한 대가라는 생각이 들자 순간 돈을 버리고 싶었다. 그만큼 아직도 부정행위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차마 돈을 버리지는 못하고 그대로 학원에 왔다. 시험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지만 학원에서는 발 빠르게 답안을 입수해 채점한다고 공고했기 때문이다. 비싼 돈을 내고 학원에 다니는 장점이겠지만 그만큼 긴장감도 덜하기 마련이다. 학원에 도착했을 때 가장 큰 강의실인 201호실은 이미 만원이었다. 상업 선생님이 칠판에 정답을 적기 시작했다. 커닝 페이퍼로 만든 답안지를 챙겨 왔기에 채점하려고 자리를 찾고 있을 때였다. 앞 중간 자리에서 윤정 누나가 손짓했다.
“준이야, 여기야! 여기.”
좁은 틈새를 비집고 나는 누나 옆에 섰다.
“시험 잘 봤어? 잘 본 거 같아?”
“대충 봤어요. 누나는?”
“다행히 잘 봤어. 지금 답 맞추고 있어. 여기 옆에 앉아.”
누나는 앉았던 의자에서 반쯤 엉덩이를 비켜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자세가 영 이상한지라 나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그럼 빨리 맞춰보고 자리 마련해 줄게. 거의 다 했어.”
강의실 곳곳에서는 탄식과 함께 기쁨에 겨운 환호가 계속됐다. 선생님이 칠판에 답을 쓸 때마다 희비가 교차하는 소리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지난 몇 달간의 노력과 인내가 앞으로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이리라.
“그나저나 너 어제 집에 안 들어갔어? 진아가 갑자기 호출했었어.”
“얘기 들었어요.”
“급한 대로 둘러대긴 했는데 어디 갔었어?”
“학원에 왔다가 세희 만나서 같이 있었어….”
“뭐했기에 집에도 안 가고.”
“같이 저녁 먹고 술 한잔 하고 그랬지 뭐.”
“그리고? 또 어디 갔었어?”
진아처럼 누나까지도 꼬치꼬치 캐물었다.
“세희네서 잤어. 별일은 없었고. 아, 인제 그만 해요.”
“정말이지? 진아한테는 뭐라고 말했어?”
“그냥 누나가 말한 대로 애들이랑 공부했다고 했어.”
“오해 살 만한 행동은 하지 말고 오늘 일찍 들어가서 진아랑 함께 있어. 그게 좋을 거 같아.”
“알았어요….”
저녁에 같이 외식하자고 남긴 진아의 메모가 떠올랐다. 어차피 시험이야 합격했을 테니 답을 맞히는 일은 큰 문제가 아니다.
누나에게 먼저 가겠다고 하고 집으로 왔다. 진아는 없었다. 아침에 나간 그대로였다. 문도 열려 있었고 도시락도 그대로였고 메모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나간 뒤 진아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 같다. 다급해진 난 진아에게 호출하고 청량리로 갔다. 이젠 몇몇 여자들이 나를 알아보고는 장난을 걸기도 하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여진이와 다른 여자 두 명이 있었다. 하지만 진아는 없었다.
“진아 있어?”
급했던 나는 다짜고짜 여진에게 말을 걸었다.
“준이? 웬일이야?”
“진아 여기에 왔냐고!”
“진정해, 무슨 일이기에 진아를 여기서 찾고 그래.”
“진아 왔잖아! 진아야! 진아야!”
나는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진아가 쓰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진아는 없었고 다른 여자가 금목걸이를 한 중년 남자의 성기를 빨고 있었다. 갑작스런 침범에도 여자는 당황하지 않고 하던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 그녀는 마치 이빨을 닦는 듯 그걸 빨았다. 진아가 있을 때와는 방의 구조도 달랐고, 방에 있던 물건들도 변했다. 남자가 내 쪽을 보려고 고개를 돌릴 때 방문을 닫았다. 뒤따라온 여진이가 놀란 표정으로 화를 냈다.
“준이, 너 이러면 곤란해. 아무리 너라도 이러면 안 된다고!”
“빨리, 진아가 있는 곳 말해 줘.”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일루와.”
여진이는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 진아가 쓰던 방을 가로질러 가니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왔고 그 계단을 올라가자 허리를 굽히고 들어갈 정도의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를 지나 세 번째 방에 들어선 여진이는 예의 그 핑크빛 불 대신 하얗게 표백된 빛을 내는 형광등을 켜고 앉았다.
“무슨 일이야. 진아가 있는 곳이라니?”
“여진이도 정말 모르는 거야? 진아가 집을 나간 거 같아.”
“오늘 아침에 연락이 왔기는 했어. 잠깐 여행 간다고.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어디로 간다고 했는데?”
나는 여진이의 말에는 대꾸도 안 하고 궁금한 것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냥 여행 간다고만 하고 더는 말이 없었어. 나도 자다가 연락받아서 대충 끊었다고.”
“어제 외박했어. 새벽에 집에서 진아와 다퉜고…. 알잖아, 진아 임신한 것 때문에 서로 요즘 안 좋은 거.”
“그렇군. 금방 돌아올 거야. 그런데 왜 외박했는지 물어봐도 돼?”
여진이 또한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오늘 시험이라… 친구들과 공부했었어.”
나는 진아에게 그랬듯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준이는 지금 거짓말하고 있어.”
말이 끝나자마자 여진이는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정말이지 여자의 직감은 무섭다. 아마 진아 또한 거짓말을 눈치채고 집을 나간 건지도 모른다.
“그래, 솔직히 말할게. 실은 학원에 갔다가 아는 친구를 만나서 저녁 같이 먹고 그 친구네 집에서 잤어.”
“당연히 여자겠지?”
“응….”
“그리고 더 무슨 일 있었어?”
“잠만 잔 거야. 정말이야. 새벽에 와서 진아에게도 거짓말했어. 닦달해서 화를 냈고…. 그게 전부야.”
“휴… 복잡하게 됐군. 왜 거짓말한 거야? 아무 일 없었으면 사실대로 말했어도 되잖아?”
여진이는 내 가장 큰 죄를 추궁했다.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그랬어. 중요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저런 저런, 자기 맘대로군. 준이한테 실망인데?”
“어쩔 수 없었어….”
“난 모르겠어. 아무튼 진아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지, 안 그래?”
“그래야겠지. 소란 피워서 미안해. 그만 가볼게.”
“진아한테 무슨 연락 오면 나한테 바로 호출해. 나도 그렇게 할 테니까.”
여진이는 자리에 일어서면서 나를 한 번 쳐다봤다.
“그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진아가 있을 곳을 생각해 봤다. 따로 갈 곳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예전에 살던 집일까, 세아라는 친구가 있는 울산일까. 하지만 진아는 그곳들로부터, 그 친구로부터 단절된 지 오래다. 아마 내가 진아였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이 아닌 말을 듣고 난 후에 어디로 갔을까? 그 사람이 나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됐을까?

벌써 여름도 다 갔다. 가끔 인디언서머가 기승을 부릴 뿐이다. 한 달이 지나도록 진아로부터 아무 연락도 없었다. 거의 매일 여진이를 찾아가고 이곳저곳 수소문했지만 소용없었다. 여진이는 영업에 방해가 된다며 점차 나를 멀리 했다. 그런 반응은 진아의 행방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낼 뿐이었다. 하지만 여진이는 끝까지 모른다고, 연락 같은 건 없었노라고 대답했다.
진아와의 오해를 풀 수 있었던 기회를 맞바꾼 시험 결과는… 합격이었다. 3주가 지나고 학원에서 합격 통보를 알리는 연락을 했다. 조만간 학원에 와서 합격 증서를 받아가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수석도, 차석도 아니었다. 좋은 성적을 애초 기대하진 않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던 차에 반가운 연락이 왔다. 홍균이 형이었다. 삐삐에 남긴 음성에서 형은 조만간 만나자고 했다. 시험은 잘 봤냐는 안부와 함께.
이틀 뒤 저녁, 합격 증서를 받으러 학원으로 갔다. 마주친 선생님마다 결과를 궁금해하며 안부를 물었다. 합격만 했노라고 대답했다. 선생님들은 축하해 주면서도 우리 학원에서 전국 수석이 나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강의실에 올라갔다. 못 보던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준이, 여기서 뭐 하니?”
담임선생님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검은 얼굴에 자상한 미소를 한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합격 증서 받으러 왔다가 잠깐 들렀어요.”
“당연히 합격은 했겠지?”
“네….”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다. 잠깐 나 좀 보고 가.”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데리고 갔다.
“준이는 왜 수능반에 등록하지 않았지?”
“형편도 그렇고요, 이제 공부는 그만하려고요.”
“무슨 소리야. 공부를 해야지. 부모님께 연락은 했고?”
“아니요….”
“수능반도 장학 제도가 잘 돼 있어. 공부는 계속 해야지.”
“선생님, 대학에 꼭 가야 하나요?”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럼, 당연하지.”
오랫동안 고민한 질문에 선생님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네….”
“지금 여기서 더 방황해봤자 시간 낭비만 하는 거야. 기왕 시작한 공부니까 대학은 가야지. 대학 가서도 열심히 공부해야겠지만 말이야. 세상은 결국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렇지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목표도 없구요….”
한껏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지. 공부는 그냥 하는 거야. 사람은 평생 공부하면서 살잖아, 안 그래?”
“좀 더 생각하고 연락 드릴게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어. 준이는 공부해야 해.”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일 년 동안 돌봐주셔서요.”
“허허, 새삼스럽게 무슨. 아무튼 공부하기로 약속하는 거다.”
“네, 선생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좋은 분이다. 아마도 나는 선생님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사정을 모르셨다. 무얼 원하는지도 정확히 모르셨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니까.
학원 정문을 나오니 하늘에서는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름 막바지라 해가 늦게 지기 시작했지만, 노을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밖을 나서기 싫어 고민하고 있을 때 형에게서 호출이 왔다. 학원 1층 로비에 있는 공중전화기로 음성을 들었다. 지금 바로 학원 앞에 와 있다고, 만나자는 음성이었다. 정문 앞으로 나가니 검은색 구형 그랜저 한대가 서 있을 뿐 형은 보이지 않았다.
「빵, 빵」
형이었다. 구형 그랜저의 오른 창문이 열리더니 나를 부르는 형 목소리가 들렸다.
“준이야, 얼른 타!”
도로와 학원 앞 보도 사이의 철제 담을 뛰어넘어 차에 올라탔다. 형의 얼굴이 보였다. 정산이 형과 싸우고 학원을 그만 둔 지 거의 9개월 만이었다.
“형! 이게 얼마 만이에요.”
“하하, 나 보고 싶었구나? 정말 오랜만이야.”
우리 둘은 서로 악수했다. 십 대엔 담배나 섹스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람과의 악수라지만,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달리 해야 할 인사법도 우리에겐 없었다.
“일단 차를 좀 빼자. 길을 막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형은 혼잣말하듯 말하고는 기어를 넣고 차를 몰았다. 여전히 밝고 강한 모습이다. 차 안에서는 에어컨이 약하게 나왔다.
“학원에서 나올 줄은 몰랐네. 수업 들었던 거 아니야?”
“선생님을 잠깐 만나러 왔었어요. 운이 좋게 타이밍이 맞아서 형과 만난 거야.”
“그래? 선생님은 잘 계시지?”
“그럼요, 여전하세요.”
“선생님을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그나저나 시험은 잘 봤어?”
“응, 합격했어요.”
“이야, 축하한다.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그리고 축하 기념으로 한 턱 쏠게! 어디로 갈까?”
“아무 데나. 형이 잘 아는 곳으로 가요.”
“그래? 그럼 장흥 어때?”
“좋아요.”
한 시간가량 지나 장흥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그간 있었던 일들을 형에게 이야기했다. 학원 생활들, 시험 보는 날 있었던 사건들 그리고 진아와 일까지 모두…. 형은 다시 조직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고, 내년 4월에는 꼭 시험을 볼 거라고 했다. 장흥에 도착해서 늦은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술과 안주를 시켰다. 근처엔 다 카페나 모텔뿐이라 남자들끼리 딱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진아가 집을 나간 이후 거의 매일 저녁마다 밥 대신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안주로 닭똥집이 나오고 소주를 잔에 따를 때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요즘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어?”
사회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형은 살림 걱정부터 했다.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버티고 있어요. 시험 끝나고 나서 새벽에 다시 명함 돌리고 있는데 일이 영 재미없어요. 밤에 술 먹고 자면 새벽에 못 일어나기 일쑤고….”
“학원은 다시 등록한 거야?”
“아니, 아직은 안 했는데 아까 선생님 만났을 때 꼭 수능 반에 등록해서 공부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구나. 그래도 나보다 낫네. 난 공부도 금세 포기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잖아. 아쉬운 생각만 들어.”
“형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꼭 그럴 거구.”
“그래, 꼭 해야지. 자, 한 잔 더 하자. 건배!”
둘이서 소주를 5병 정도 더 비웠을 때 형은 조용히 내게 물었다.
“그 진아라는 애 찾아줄까? 너 요즘 걔 때문에 많이 힘들지?”
“…….”
“내 밑으로 그거 사람 뒷조사하는 거, 그 뭐더라… 그….”
“소개소 같은 거?”
“아니, 그 이름 말고… 그게….”
“아, 흥신소?”
“그래, 맞아. 흥신소. 밑에 애들이 하거든. 찾을 수 있을 거야.”
“정말 찾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나는 형에게 물었다.
“주민등록번호랑 사진 있지?”
“응, 집에 있을 거예요.”
“그거면 돼. 나중에 찾아서 줘. 꼭 찾아볼게.”
“아무튼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형.”
“별일도 아닌걸. 그나저나 일자리도 좀 알아볼까?”
“그랬으면 좋겠어. 정말 일이라도 안 하면 이제 먹고살기 힘들어요.”
“그 정도로 어려웠구나. 진작 나한테 연락 좀 하지! 일단 오늘은 집에 가고 내일 저녁에 신사역으로 와. 어딘지 알지? 와서 전화해.”
“당장 일할 수 있는 거예요?”
“당연하지. 자리 마련해 줄게. 일단 웨이터 자리가 비었으니까 그 일 하면서 상황 좀 배우다가 업소 관리하는 일을 줄 수 있을 거야. 어때, 괜찮겠어?”
“나야 고맙지. 형 정말 고마워요.”
“내가 매일 있지는 않지만 애들한테 말해 놓을게. 돈도 잘 받을 수 있을 거야. 팁도 두둑이 받을 수 있고.”
“응.”
“그만 가자. 늦었어. 나도 일 가봐야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넘었다. 형은 집 앞까지 태워다 주면서 옷을 사 입으라고 백만 원짜리 수표를 내밀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형은 “나중에 갚으면 돼”라는 말과 함께 돈을 주고 갔다.
진아는 잘 있을까. 형이 말한 대로 찾을 수 있을까. 내일부터 새로운 일을 하게 됐다는 안도감, 진아에 대한 걱정으로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쉽게 잠 잘 수 없었다. 진아가 사라지고 난 후 나는 거의 매일 진아 꿈을 꿨다. 언제나 곁에 있는 것처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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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판 일 : 2017.12.01 ⓒ K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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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음   글 [일몰의 시작 #25] “팁은 니가 챙기면 돼. 눈치껏 알아서 하라고”
이   전   글 [일몰의 시작 #23] 나는 영혼을 팔았고, 그녀의 안녕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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