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지금부터가 문제네요.”
했다. 정교수가 힐끗 종원을 보았다. 종원은 여전히 모니터를 주시한 채
“기수가 지금 결정을 해야 합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11번과 8번을 넘어서서 단독 선행으로 거리차를 더욱 벌여나갔다가 결승주로에서 버텨내던지, 꾹 참고 지금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가 4코너를 돌고 결승주로에 들어선 후 다른 선입 추입마들이 추입을 시도할 때 함께 마지막 힘을 다해야 할지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정교수님이 받았다는 쏘스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네요. 그렇다면 기수의 지금 한순간의 결정이 정교수님이 바라는 그림을 그려내어 주느냐의 순간입니다.”
했다. 종원의 말이 끝나는 순간 10번마의 기수가 단독 선행을 결심한 듯 채찍을 든 팔을 휘돌려대며 경주마에게 채찍을 가하더니 이내 8번마를 재치기 시작했고 이어 다시 11번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가 싶더니 기어이 11번마 마저 재치고 단독 선행으로 뛰쳐나갔다. 와-하는 탄성들이 터져 나왔다. 정교수가
“승부했습니다!”
하고 목맨 소리를 하며 불끈 두 손을 쥐어 보였다. 종원도 이를 꽉 물었다. 비록 자신이 베팅을 하지 않았지만 정교수의 바람대로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정교수를 통해 규태를 생각해냈었다. 모든 것을 털어내고 파리로 떠나겠다던 정교수와 다시는 안돌아오겠다고 했던 규태의 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1800을 뛰었던 말입니다. 힘이 있습니다.”
정교수가 다시 목매인 소리를 토해냈다. 10번마는 4코너를 돌아 결승주로를 들어서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역주를 했다. 최소한 5-6마신 이상 뒤떨어진 거리차를 두고 다른 경주마들도 4코너를 휘돌아 결승주로로 들어섰다. 8번마와 11번마는 10번마에게 선행을 빼앗긴 후부터 승부의욕이 상실된 듯, 아니면 10번마와 안간힘을 쏟으며 선행다툼을 벌인 게 무리였던 듯, 질주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추입해오는 다른 경주마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처지고 말았다. 결승주로를 들어서서 결승선을 앞에 둔 경주마들은 저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앞서가는 10번마를 뒤쫓기 시작했다. 한데 뒤엉킨 듯 보이던 경주마들의 저마다 남아있는 힘과 저마다의 추입 능력의 차이만큼 순위들을 바꿔가며 결승선을 향해 질주를 했다. 10번마는 아직 선두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 버텨라! 조금만 더 버텨내라!”
정교수가 비명 같은 외침을 토해냈다.
10번마와 기승한 기수는 마치 정교수의 간절한 외침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얼마 남지 않은 결승선을 앞에 두고 말 그대로 혼신을 다한 최선의 역주를 해내고 있었다. 종원도 10번마와 기수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 10번이 들어오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정교수의 불끈 쥔 두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10번마의 입상은 거의 확실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경마경주는 결국 경주마의 경주능력의 경연장이었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4번마와 입상유력마로 지목되었던 6번마는, 모두가 이제는 추입해내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결승선을 바로 50여미터 앞에 둔 지점에서 무서운 힘으로 추입을 해내며 2번마와 함께 10번마를 재치며 결승선을 통과해 갔다. 아! 하고 이곳저곳에서 탄성들이 터져 나왔고 정교수는 절망으로 가득 찬 비명을 토해냈다.
“참말로 죽이네! 10번! 다 들어왔다 싶었는디 어치케 저 짧은 거리에서 추입을 당한다요?”
봉주가 혀를 내둘렀다. 정교수는 고개를 묻었다. 종원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모니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니터에서는 느린동작으로 결승선을 통과해가는 네 마리의 경주마의 모습들이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4번마와 6번마가 코 차이의 승부로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갔고 경주로의 안쪽을 파고들며 2번마가 머리하나 만큼의 차이로 그 뒤를 따랐다. 선행을 빼앗은 후 혼신의 역주로 버텨냈던 10번마는 2번마에게 마저 덜미를 잡히며 다시 머리 차이만큼의 차이로 4위로 밀려났다.
“다행입니다. 박형 말대로 대끼리로 바쳐 둔 게...”
정교수가 떨어트리고 있던 고개를 들며 종원을 보고 허무감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10번이 승부를 하기는 했었네요.”
종원이 씁쓸하게 미소지어보였다. 정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꼭 쏘스가 아니었더라도 10번에 기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일낼 거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마침 쏘스까지 날아와서 승부를 해 본겁니다.”
정교수는 아쉬움과 미련을 떨쳐내려 애쓰며 다시 쓴 미소를 지었다. 가뜩이나 움푹 팬 두 눈이 반짝했다. 정교수는 잠시 두 눈을 껌벅이더니
“그래도 박형 때문에 다시 한 번 승부를 벌여 볼 여력이 있어 다행입니다.”
하고 말하고는
“다시 한 번 도와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오늘요...?”
종원이 물었다.
“아뇨. 다시 준비를 해야죠.”
정교수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