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슨 일 있어?”
오상구가 종원에게 물었다. 종원이
“모르겠어요. 규태형 형수한테도 연락해야 한다고 하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만나서 얘기하겠대요.”
하자 봉주가
“나가 같이 갈까라우?”
하고 소파에서 일어나려는 동작을 해보였다. 종원이 손을 들어 제지를 하며
“아냐. 혼자 가볼게.”
하고는 여전히 멋쩍은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서있던 정교수와 오상구에게 눈인사를 해보이고는 방문을 나섰다.
“뭔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시오?”
하며 봉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따랐고 청년들은 방을 나서는 종원의 뒤를 향해 다시 허리를 꺾었다. 봉주는 복도까지 따라 나와
“차키 줘라우?”
하고 물었다. 종원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걱정 마 택시타고 갔다 올게.”
하며 복도를 돌았다.
종원이 세형과 약속한 카페에 들어서자 규태의 애인 영숙도 이미 와있었다. 종원은 영숙에게 고개를 꾸벅해보이고는
“괜찮아요?”
하며 잘 견뎌내고 있었느냐고 묻고 싶었던 말을 그렇게 대신하고 자리에 앉았다. 영숙은 해쓱한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슨 일이야?”
종원이 세형을 보며 물었다. 세형은 흘낏 주위를 둘러보고는
“마반장이란 놈이 형수를 찾아왔었데.”
했다. 종원이 다시 영숙에게 시선을 돌렸다.
“집으로 찾아왔다는 거에요?”
영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요?”
“어제 밤에요.”
영숙이 나직이 대답했다. 영숙의 얼굴은 아직도 규태의 돌연한 죽음에 대한 슬픔과 그 죽음에 대한 의혹과 알 수없는 공포감이 한데 뒤섞여 있는 듯 했다. 종원은 마반장이 무슨 이유로 영숙을 찾아갔는지 짐작을 하면서도 
“뭘 묻던가요?”
하고 물었다. 영숙이 잠시 머뭇하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세형이
“괜찮아요. 종원이 한테는 다 얘기하세요.”
했다. 영숙은 다시 잠시 머뭇하더니
“돈가방 얘길 했어요.”
했다. 종원은 짐작했던 대로라는 듯 나직이 긴 숨을 몰아 내쉬고는
“규태형이 형수한테 돈가방 얘길 했었어요?”
하고 물었다. 영숙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뇨.”
하고는
“돈가방이 무슨 얘기에요? 돈가방 때문에 규태씨가 죽은 거에요?”
하고 되물었다. 종원은 잠시 두 눈을 껌벅이고는
“규태형하고는 관계가 없는 얘기에요.”
했다. 세형이 흘낏 종원을 보았다. 종원은 다시
“규태형은 다른 일 때문에 그렇게 됐어요.”
했다. 영숙이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 다른 일이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었는데 누가 그렇게 규태씨를 잔혹하게 죽인 거에요?”
하더니 기어이 고개를 묻고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종원과 세형은 씁쓸한 얼굴로 영숙이 다시 스스로를 진정시킬 때까지 말없이 영숙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영숙이 눈물을 닦아내고는
“규태씨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렇게 초라하게 보내야 했던 거에요?”
하고 물었다. 종원은 잠시 두 눈을 껌벅여보이다가
“규태형은 아무 잘못 없어요. 회사에서 형수에게 대신 보상할 거에요.”
했다. 세형이 다시 흘낏 종원을 보았다.
“그 사람 이미 죽었는데 죽고 나서 보상 같은 게 무슨 소용 있어요?”
영숙의 눈가가 다시 촉촉이 젖어들었다.
“형수... 홀몸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요.”
종원이 애틋한 눈빛으로 영숙을 보며 말했다. 영숙은 애써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스스로 추스르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형은 늘 떠나겠다고 했어요... 멀리 떠나서 형수하고 아이하고 새 삶을 살고 싶다고 했어요... 형이 죽기 전날... 나에게... 만약 형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형수하고 아이를 부탁한다고 했어요... 내가 멀리 보내드릴게요. 형수가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드릴게요.”
종원이 씁쓸한 미소 띤 얼굴로 영숙을 보며 말했다. 영숙은 슬픈 얼굴을 한 채 애써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