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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2화 "유혹" (5) |
"어디 오늘 운세 사나운 거 만회 좀 해줄려나?"
잠시 후에 나타난 장길수가 명함보다 조금 크고 길쭉한 얇은 하얀 종이에 컴퓨터인쇄로 숫자들이 찍혀 있는 표 한 장을 상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돈 건거야?"
손영무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잘하면 오늘 밑천 좀 마련해보는 거지."
하고 장길수는 여전히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밑천을 마련하다니?"
손영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밤에 카드 한번 하기로 했거든?"
"카드?"
"가끔 하는데 판이 좀 커서 아무래도 밑천 딸리면 마지막카드도 못보고 꺾어야할 때가 많거든? 어차피 놀음은 판돈 많은 놈이 이기게 돼있다구. 여기서 돈 좀 불려 가면 좋잖아?"
장길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건들거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손영무는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참! 앞으로 가서 보고 싶다고 했지? 나가자구."
장길수는 담뱃불을 붙여 한 모금 길게 빨고 `훅!`하고 연기를 내뿜고는 층층으로 되어있는 콘크리트바닥의 스탠드에 줄지어 앉아있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앞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영무는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광장으로 내려서자 그늘을 벗어나서인지 햇볕이 제법 따가웠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광장까지 내려와 돗자리와 신문들을 깔아놓고 앉아 제법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손영무는 트랙을 사이에 두고 길게 둘러쳐진 난간 위로 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트랙 쪽에서 바람 한점이 불어와 야릇한 냄새를 실어왔다. 손영무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팡파레가 울리며 대형화면에서는 말들이 출발을 하기 위해 게이트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것 같더니 `탕!`하는 소리와 함께 말들이 게이트를 뛰쳐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손영무는 처음 보는 경마라 신기한 듯 전광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똑같은 말들인데도 게이트를 뛰쳐나오는 모습부터 달랐다. 벌써부터 혼자서 멀찌감치 도망치듯 달리는 말도 있었다. 그 뒤를 두세마리의 말들이 조금이라도 앞서려고 전력을 다해 뒤쫓고 또 그 뒤를 다른 말들이 뒤쫓아 가며 어느새 앞서 도망치는 말을 두고 진군하는 2열 종대형의 기마병들 같은 모습들이 보여졌다.
"저 새끼 또 어정쩡하게 자리를 잡네."
장길수가 전광판을 보며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몇 번 말?"
"2번 저 새끼말야."
손영무는 대형화면 속에서 2번말을 찾아보려 애썼으나 그 말이 그 말 같았고 기수가 앉아있는 안장 아래의 번호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순간 화면 하단의 네 개의 번호 끝에 2번이 찍혀있는 걸 알았다.
"2번이 4등으로 가고 있다는 건가?"
손영무가 물었다.
"저 말은 선행을 받아야 잘 뛰는 말이란 말야. 선행 못 받으면 코너를 돌면서 제풀에 지쳐 승부를 포기해버린단 말야. 2번에 자리 잡았으니 5번이나 6번보다 댕싸움 했어도 밀리지 않았을 텐데 저 새끼 아예 댕 내주고 인코스 타고 뒤만 쫄쫄 따라가네. 병신 같은 새끼 쥐뿔도 추진력도 없는 놈이 지가 무슨 태종이나 효섭이라고 코너 돌면서 치고나오겠다는 거야 뭐야? 에이 쓰발 벌써 저 새끼 놓고 산 마권은 휴지됐네."
장길수는 손영무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혼자 지껄여대며 흥분을 했고 손영무는 장길수가 바램대로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차마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대형전광판만 바라본 채 두 눈만 껌벅였다. 마침내 모든 말들이 5번말을 앞세우고 코너를 돌기 시작했다. 일직선으로 늘어서서 달리는 듯 했던 말들이 어느새 코너를 돌자 마자부터 한데 and쳐 달리기 시작하더니 월등히 앞섰던 5번말과의 간격을 좁히며 어느새 한데 어울려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순간 난간에 두 팔을 올려놓고 턱을 괴고 있던 손영무의 뒤쪽에서 `와!`하는 함성들이 터져 나왔다. 손영무가 흘낏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들이 빠져나왔던 1층의 계단과 광장바닥에 있는 사람들만이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2층과 3층과 4층에 가득 차서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을 하고 들고 있던 책들을 휘두르며 뭐라고 저마다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손영무는 입을 벌린 채 말들이 달리는 것도 잊은 채 사람들의 모습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두두`하는 말달려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영무는 다시 트랙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편에서부터 말들이 한데 어울려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형화면에서는 다른 각도로 말들이 달려오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래 짜식아 때려라! 때려!"
장길수가 발악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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