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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2화 "유혹" (8) |
"너무 무모한 것 같은데?"
"경마자체가 무모한 건데 뭐."
"장형은 뭘 샀어?"
"나야 그냥 8놓고 2, 7 두 방만 샀지 뭐."
마침내 9경주가 시작되었다. 발주대를 뛰쳐나간 경주마들은 선행, 선입, 추입, 자유마들이 고루 분포되어있는 경주편성답게 보기도 좋게 일렬로 늘어서며 경주를 벌여나갔다. 인기마들 중의 하나였던 2번마와 7번마가 예상대로 선행을 해나가고 축마라고 했던 8번마는 3등으로 따라붙으며 힘 안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뒤를 고만고만한 거리차를 두고 다른 경주마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뻔한 게임이었어."
장길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6번은 보이지도 않네?"
"그러게. 좀 들어와서 터져주면 좋잖아? 머리하고도 164배나 되는데 말야."
장길수는 아까 예시장에서와는 달리 비웃음 비슷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내심으로는 자신이 선택한 마권의 번호들을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대형화면에 11번마가 뒤에서부터 치고나오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어! 어!`하는 소리들을 질러댔다. 11번마는 순식간에 8번마를 지나쳐 앞서 달리는 2번마와 7번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른 경주마들까지 11번마의 뒤를 따라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자 한순간에 질서정연하게 달리던 경주마들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4코너를 돌아 결승직선으로 질주해오던 경주마들이 한곳에 뭉쳤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11번마는 2번마와 앞 다퉈 질주를 해 나갔고 마침내 외각을 크게 돌아 앞서기 시작했다. 다시 `와!`하는 함성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짜샤! 치고나와! 치고 나와!"
장길수가 소리를 질러댔다. 앞서 뛰쳐나오던 11번마는 지친기색도 없이 계속 앞으로 질주해나갔고 선행을 해가던 2번과 7번마는 벌써 지친 듯 걸음이 무뎌졌다. 뒤따르던 8번마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뒤이어 3번, 5번, 9번마들이 치고나오기 시작했다. 그들 틈에 6번마도 끼어들었다. 중계아나운서의 중계음성이 흥분 된 듯 더 빠르고 높아졌고 관중들의 함성도 함께 더욱 커져갔다. 결승선이 가까워질 때까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대혼전이 벌어졌다. 6번마가 끝까지 버텨내려는 11번마를 앞지르며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6번마 뒤를 따라서 11번, 번, 5번, 8번의 순서대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장길수가 창백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비명 같은 소리들을 질러댔다. 대형화면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경주마들의 모습이 느린 동작으로 다시 보여졌다. 순간 경마장에는 침묵이 흘렀다. 6번이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고 그 뒤를 11번마가 코차이로 결승선을 지나갔다. 다시 그 뒤를 제각기 목과 머리하나 차이쯤으로 5번, 8번의 순서대로 지나갔다.
"터졌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1260배다!"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6번이 들어왔어."
장길수가 소리를 치며 손영무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을 돌아보고 뻥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데 손영무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만 있었다.
"들어온 거 맞는 거야?"
"봤잖아?"
"응 보긴 봤는데 6하고..."
하는 순간 장길수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소리를 낮췄다.
"쉿!"
"왜?"
"이리 와봐!"
장길수는 손영무를 끌다시피 하며 복도를 가로질러 관람대를 빠져나와 예시장 쪽의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갔다.
"999 맞췄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돈 뜯어내려고 한단 말야. 조용히 있어!"
하며 뻥한 표정의 손영무를 다독이고는
"마권 줘봐!" 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거?"
손영무는 셔츠호주머니에 꽂아두었던 마권을 꺼내 장길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찾아올 테니 아까 거기로 가 있어. 맞췄단 얘긴 절대로 아무한테도 하지 말고."
손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1260만원이야! 1260만원!"
장길수는 과장된 제스처로 마권에 입을 맞추고는 손영무에게 윙크를 해보였다. 손영무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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