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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2화 "유혹" (9) |
"씨팔! 이게 경마야? 놀음판이지? 여기서 어떻게 6하고 11이 들어와?"
한사람이 예상지를 바닥에 내던지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씩씩대자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예상지 아무리 뒤져봐도 6 잡아 놓은 데는 하나도 없네."
"예상지에 잡혀있었으면 저 배당이 나왔겠어?"
"이 책에는 11번을 시물레이션인지 뭔지에 올려놨네?"
"11번 올려놓은 거야 여기도 있어. 봐! 조교 추천에 5번째로 나와 있잖아?"
"쓰발! 들어오고 나면 이렇게 저렇게 엮어 말 할 수 있지만 뛰기 전에 어떻게 그것들을 일일이 조합해서 엮어내? 지들이 추천한 다섯 마리예상에는 그림자도 없는데?"
"씨팔놈들이 그래도 다음주에는 시물레이션이 어떻구 전산산정예상이 어떻구 조교추천이 어떻구 하면서 1260배를 적중시켰다고 광고 때리겠지?"
"마사회가 마방하고 한번 짜고 친 고스톱 아냐 이거?"
손영무는 잔뜩 화난표정으로 씩씩대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들 중의 한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광판의 배당은 어느새 10경주의 배당으로 바뀌어있었다.
"자! 지난주 고배당경주 단통으로 적중시킨 경마예상지 있습니다!"
"오늘의 고배당 추천경주 나와 있습니다!"
하는 소리에 손영무는 자신이 어느새 경마장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를 생각하며 흥분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했던 스스로에게 겸연쩍어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날, 돈을 찾아오겠다며 마권을 가지고 간 장길수는 10경주가 지나고 11경주가 지나고 12경주가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손영무는 하루경주가 다 끝나고 청소용역원들이 그 지저분하던 관람대의 복도와 계단과 광장은 물론 경마장주변의 구석구석까지 깨끗이 청소를 다 끝낼 때까지 장길수가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 곳에서 마냥 장길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경비원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앉아 하루경마에 대한 미련과 후회들을 토해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향해
"이제 모두 퇴장해주세요. 오늘 경마관람시간이 다 끝났습니다. 모두 퇴장해주십시오."
하는 외침들을 하며 돌아다닐 때까지 손영무는 1층 객장의 유리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불 꺼진 전광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이든 경비원 한 사람과 그보다는 조금은 젊어 보이는 경비원이 다가오더니 공손히 말했다.
"이제 나가주셔야 할 시간인데요?"
손영무는 두 눈을 껌벅이며 경비원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재미가 안 좋으셨나보네요?"
젊어 보이는 경비원이 위로하는 듯한 표정으로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뇨. 아까... 1260배 맞췄어요."
손영무가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경비원들의 눈이 휘동그래졌다.
"9경주 맞추셨어요?"
"예."
손영무는 뽐내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이구! 축하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계세요? 얼른 가셔서 축하 술이라도 한잔 해야죠?"
나이든 경비원은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양 얼굴에 함박미소를 지어보였다.
"친구가 돈 찾으러 갔는데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손영무는 여전히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순간 두 경비원들은 흘낏 서로 마주보더니 굳어진 표정을 지었다.
"1260배 터진 게 9경주 아닙니까? 그때 돈 찾으러 가서 여태 안 왔어요?"
손영무는 대답대신 두 눈만 껌벅여보였다. 경비원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저... 그 친구 안 올 것 같은데요?"
하고 젊어 보이는 경비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안... 오다뇨?"
"아마... 벌써 돈 찾아가지고 갔을 겁니다. 환급마감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요?""나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요?"
경비원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마치 자신들이 대단한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손영무의 시선을 피했다. 젊어 보이는 경비원이 다시 물었다.
"친한 친군가요?"
"예...?"
하고 손영무는 잠시 머뭇거렸다.
"실은 한달... 조금 지났네요. 직장동료였거든요? 오늘 문닫아버린 회사지만요."
경비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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