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팬 VS 꾼 - 제2화 "유혹" (10) |
"얼마 맞추셨어요?"
젊어 보이는 경비원이 다시 물었다.
"예. 6번 말을 놓고 모든 말에 만원씩 걸었거든요?"
"만원요? 그럼 1200만원이 넘네?"
하더니 마치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안 올게 틀림없네요."
하고 단호하게 말한 후 다시 손영무의 눈치를 살폈다. 손영무는 잠시 불 꺼진 채로 버티고 서있는 배당판과 착순게시대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예... 그런가보네요."
하고 그제야 경비원들의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비원들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수고하세요."
손영무는 측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경비원들에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떨군 채 뭐라고 혼잣말을 지껄이거나,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땅을 한번 쳐다보며 `푸!`하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걷는 사람들과, 혼자 혹은 두셋이 제각기 다른 예상지들을 펼쳐 견주어보며 내일의 경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걷고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천천히 경마장을 빠져나갔다.
다음날 손영무는 장길수를 만나러 경마장에 다시 갔다. 그러나 장길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주에도 또 그 다음주에도 장길수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손영무에게 경마로 1260배라는 고배당적중의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해주었던 장길수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다. 손영무는 장길수가 자기 앞에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도, 결국 장길수를 찾겠다는 생각을 버린 후에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경마장을 찾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고, 경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경마장에 와서 그저 경주마들을 보는 것이 좋았고 또 경주마들이 달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날의 6번 말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까이 가서 보면 모든 경주마들의 눈동자가 하나같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손영무에게는, 사람들이 하루경마가 끝난 후 내버리고 간 예상지들을 주워 모아들고 집으로 가지고 가서 그날의 경주 결과에 대해 제각기 다른 예상을 했던 예상지들의 예상과 결과들을 서로 비교해보고 분석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경마에 대해 경주 전에 막연히 추리해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왜 그 말들이 입상을 했는지 또 입상에 실패를 했는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게 되었다. 그 때문에 손영무의 방 한구석에는 각종의 경마예상지들이 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이기 다 뭐꼬?"
어느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방안 가득 펼쳐놓은 예상지들을 뒤적이며 비교를 하고 분석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불쑥 들어와 방안 가득 펼쳐져 있는 예상지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경마예상지들이에요."
"경마? 말 탄다는 데 말이가?"
"예."
"거기 다닐라카나? 거기 취직할라꼬 문제지 푸나?"
"취직을 하려는 게 아니구요..."
"니가 무신 말을 탄다꼬?"
어머니는 `쯧쯧!`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그 이후로 손영무가 토요일이나 일요일 날 외출을 하면
"니 또 말타러가나?"
하고 묻곤 했는데 손영무는 굳이 어머니에게 자세한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고 또 설명을 해도 알아들을 것도 아니어서 그저
"예."
하고 대답해버리고는 현관을 나섰다. 그러면 어머니는 닫기는 현관문 뒤에서
"니 말 타는 거 조심해라. 내 언젠가 한번 테레비보이까네 말 타러댕기는기 신세 망치는 일이라카더라."
하며 다시 혀를 차곤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을 경마장을 다녔다. 그러나 손영무는 결코 베팅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예시장에서 경주마들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들을 바라보고 경주를 지켜보고 하루경마가 끝나면 내버려진 예상지들을 주워 모아 가지고 와서 비교하고 분석하는 일만을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경주편성과 조교상황만 살펴보면 나름대로 경주전개와 결과에 대한 예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나름대로의 예상은 각종경마예상지의 웬만한 경마예상전문가들 보다 적중확률이 높았다. 손영무도 결국엔 다른 사람들처럼 경주 전에 경주전개와 결과를 미리 예측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유혹은 결국 또 한번의 베팅으로 이어졌다.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