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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2화 "유혹" (11) |
손영무는 그동안 검토해왔던 경마예상지들 중에서도 비교적 적중률이 높고 경주전개와 결과에 대한 예상이 자신과 가장 비슷한 경마예상전문가의 예상이 실려 있는 경마예상지 하나를 선택해서 경마 하루 전날부터 경주를 분석해보고 경주전개예상을 해보기 시작했는데, 손영무가 경마예상지에서 참고로 한 것은 단지 조교 상황뿐, 경주마의 순수마필능력, 경주마의 출전주기와 직전경주성적과 기록, 직전경주조건과 경주전개결과, 마방의 승부지수, 마필의 컨디션, 기수기용의 의미, 기수와 경주마의 호흡, 기수의 경주전개능력, 경주조건과 경주로상태 등은 자신의 추론이 중심이었고 그러한 예상의 적중률은 거의 90%에 가까울 정도로 놀라운 적중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제 6경주인 1700M 국4군 경주였다. 1700M경주는 선행마의 경주라고 할 정도로, 선행마가 경주를 전개해 나가기에 경주로의 스타트지점이 유리하게 위치해 있고 결과적으로도 선행마들의 입상 확률이 높은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날의 경주에는 총 12두의 경주마중 5두의 경주마가 선행마로 분류 될 정도로 선행마들이 대거 몰려있는 편성의 경주였기에 극심한 선행다툼과 자리싸움이 충분히 예견되는 경주였다. 그런데도 전광판의 배당은 그러한 선행마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물론 선행으로 분류된 마필들은 모두 1700M의 거리경험도 있었고, 그동안의 나름대로의 전적과 양호주로 상에서의 주파기록도 비슷했다. 그러나 손영무는 6경주의 결과가 경마예상전문가들이나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약 오륙 개월 동안을 베팅도 하지 않고 경주결과를 지켜본 후, 모든 경주가 끝나고 주워 모은 제각기 다른 예상지들을 가지고 가서 비교와 검토를 하면서 터득한 나름대로의 결과론에 의해, 전혀 고배당을 예상하지 못했던 경주에서 고배당이 발생했던 경주의 경우와 일치하는 여러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인기마들에 대한 조교사들의 심리적 부담과 승부의지가 너무 강해 전 경주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중하고 강한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손영무가 분석해낸 결과론으로는 그런 경우 경주마들이 오히려 극도의 피로감과 컨디션 저하로 자멸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며 일찍부터 승부를 하려는 기수를 기승시켰다거나, 감량이점만을 노리고 자리싸움능력이 부족한 신인기수를 기승시켰다거나, 주로 발주대의 안쪽자리에서 출발했던 경주마가 바깥쪽자리로 배정을 받았다거나, 선행마들이 너무 4번, 5번, 6번의 배정으로 한곳에 몰려있다거나 하는 따위의 것들이었다. 손영무는 어제 밤에 예상지를 보고 분석할 때부터 5두정도에 해당하는 선행마들의 동반몰락이 예상되었다. 손영무는 선행마들을 제외한 나머지 마필들을 살펴나갔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마필 한 마리를 찾아냈다. 11번 경주마였다. 1400M까지 뛰어본 경험밖에 없었고 전적도 12전중 1승 1회와 2착 1회가 전부였기에 입상이 유력한 다른 마필들에 비해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할 마필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예상지의 바닥을 일직선으로 긋고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손영무는 그 말이 뛰던 모습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늘 출발악벽으로 다른 말들과 최소한 1-2초 이상 스타트지점에서 손해를 보고나서야 맨 꼴찌부터 뒤쫓기 시작해, 비록 선행마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후미그룹과는 곧바로 격차 없이 따라붙어 4코너를 돌다가, 마침내는 일직선상에서 놀라운 추입력을 발휘해내는 말이었다. 경주마간의 결승선착차도 그리 큰 차이가 아닌 코, 코, 1/1, 목, 1/2 정도의 착차였고 비록 7-8위를 했지만 스타트 때의 차이를 감안해보면 3펄롱타임이나 평균질주속도는 오히려 다른 마필들보다 빠른 셈이었다. 더욱이 1200M나 1400M에서도 그 정도의 추입력을 보였다면 경주거리가 늘어난 1700M경주나 경주거리가 더 길어질 장거리경주들에서는 더 뛰어난 추입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또 놀라운 성적을 낼지도 모를 말이었다. 그러나 모든 경마예상지의 경마예상전문가들조차도 선행마들의 그동안의 활약과 성적만을 과신하여 어느 누구도 11번 경주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여러 예상지들의 예상을 한데 묶어 전경주의 배당형성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는 종합예상지에도, 단 한군데도 11번은 복병마로조차 거론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알았다. 손영무는 어제 밤 예상지를 분석하다가 이 6경주에 한번 베팅을 해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들며 야릇한 전율까지 느꼈었다.
손영무는 전광판의 배당을 바라보았다. 1번부터 12번까지의 어느 경주마와 동반입상을 해도 100배가 넘는 고배당이었다. 손영무는 자신이 경마장에서 처음 베팅을 했을 때 6번을 놓고 ALL란에 표기를 하여 전 경주마와 조합을 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로부터 6개월만이었다. 손영무는 그때처럼 11번마를 놓고 ALL란에 표기를 하고 마권구매가가 10만원인 까닭에 9천원으로 베팅액을 표기를 하여 10만원을 마권구매창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예상과 의지대로 제대로 된 베팅을 해보는 첫베팅이었다. 거스름돈과 함께 마권을 받아 쥔 손영무는 야릇한 흥분을 느꼈다. 아! 이런 느낌으로 경마를 하는구나. 그냥 경주를 구경만 하는 것과는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경주가 끝난 후에 결과를 분석하는 것과, 경주 전에 분석을 하고 추리를 하고 적중되기를 바라며 베팅을 하는 것과는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손영무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경마를 처음 알게 되고 1260배를 적중시켰던 그날처럼 관람대 1층의 계단을 내려가 광장 앞으로 나갔다. 경주로의 모래주로는 질주해 올 말들을 기다리며 잘 정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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