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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2화 "유혹" (12) |
마침내 발주대 안으로 모든 경주마들이 들어서고 `탕!`하는 소리와 함께 발주대를 박차고 경주마들이 뛰쳐나왔다. 예상대로 4번, 5번, 6번마와 8번, 12번마들이 일제히 치열한 선행경합을 벌이며 자리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능력이 비슷한 경주마들이어서 출발한 후 한참을 질주할 때까지도 가로로 일직선을 이루며, 도대체 어느 말이 앞서나갈지 아니면 밀려나게 될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한참을 질주했다. 결국 직선주로에 이르러서야 인코스에 배정받은 경주마들이 인코스 이점을 안고 경주로의 내측을 돌았던 결과로 조금씩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서기 위해 서로 안간힘들을 쓰고 있었다. 숨죽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죽이는 장면이구만?"
"이런 선행싸움은 또 처음보네."
"도대체 이런 편성이 어딨는겨?"
손영무의 눈길은 경주마들이 발주대를 박차고 나갈 때부터 오직 11번마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역시 늦출발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지난경주들 때보다는 조금 빨랐다는 것을 느꼈다. 경주는 한동안 선행그룹과 선입그룹, 추입그룹으로 확연히 구분된 채 그런 상태로 진행되어졌다. 이윽고 4코너에 도달하자 선행마들이 조금씩 지쳐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선입마들과 추입마들이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시 술렁거렸다. 코너를 도는 순간 그 거리는 더욱 좁혀져 거의 한데 뭉쳐진 것처럼 보였다. 코너를 돌고 결승주로로 들어서자 선행마들 중 어느 말도 재추진을 하지 못하고 지친기색이 역력한 채 내뻗는 발걸음도 무뎌졌다. 순간 선입마들이 하나둘씩 선행마들을 재치고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와!`하는 함성을 쏟아냈다. 추입마들도 선행마들을 바싹 뒤쫓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부터다!"
손영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맨 뒤에서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채찍을 휘둘러대며 질주를 유도하기 시작하는 11번마 기수의 역동적인 동작이 손영무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손영무의 불끈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11번마는 기수와 일체가 된 듯 기가 막힌 리듬과 호흡으로 역주를 시작하며 이미 지친 선행마들을 하나씩 재치기 시작하더니 놀라운 추진력으로 앞서 질주해가는 선입마들까지 하나씩 따라잡아나갔다. 다시 `와!`하는 함성들이 터져나왔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손영무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마치 손영무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듯 11번마는 전력을 다해 결승선을 향해 질주해오고 있는 선입마들의 좁은 틈 사이를 뚫고나왔다. 마침내 11번마 앞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오직 11번마 혼자뿐이었다. 온몸을 비틀어대며 채찍을 휘둘러대던 기수도 그제야 채찍을 거두고 오직 말의 추진력에만 의지한 채 역동을 추스르며 자랑스레 결승선을 향해 말머리를 길게 내밀었다. 11번마의 기수와 하나가 되기라도 하여, 마치 자신이 결승선을 통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을 비틀어 대며 광장 한곳에서 소리를 질러댔던 손영무의 입에서 `아!`하고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11마의 혼신을 다한 질주와, 역주를 유도해낸 기수의 기승술은 마치 중국무협영화에서 춤추듯 칼을 휘두르며 적들을 물리치던 협객의 무예솜씨를 보는 것 같았다. 11번마의 뒤를 이어 서너마리의 경주마들이 결승선을 통과해갔다. 손영무에게 2착마는 관심 밖의 사항이었다. 11번마를 놓고 ALL을 한 손영무에게는 오직 배당의 차이일 뿐이었다. 11번이 우승을 한 것만이 중요했고 기뻤다. 6개월 동안에 터득한 자신만의 예상과 논리가 검증 된 경주였다. 손영무는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몇 차례 흔들어대며 기쁨을 토해내고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각층마다 빽빽이 자리한 사람들이 모두 넋을 잃은 채 리플레이 되고 있는 대형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 중 누군가가 광장에서 온몸을 비틀어대며 감격해하는 자신을 바라본 사람이 있었다면 필시 자신을 정신병자거나 이 기막힌 경주를 적중시킨 장본인중 하나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리라.
2착마가 1번으로 확정되었고 11번과 1번이 동반 입상을 한 배당액은 601배나 되었다. 손영무가 경마를 알고 난 후 첫 베팅을 한 경주에서 601배를 적중시킨 것이었다.
"예치권으로 드려요? 현찰로 드려요?"
손영무가 601배를 적중시킨 마권을 창구 안으로 밀어 넣자 검표를 마친 창구여직원이 물었다.
"예...?"
예치권이라는 것이 있는지 또 어떻게 소용되는지조차 몰랐던 손영무는 당연히 현금으로 환급을 해줄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여직원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몰라 두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여직원은 그런 손영무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빤히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돈으로 드려요?"
"예."
손영무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직원은 손 떼가 잔득 묻어 한껏 부풀어 오른 채 허리가 묶여있는 50만원다발 12개와 만원을 창구 밖으로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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