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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2화 "유혹" (13) |
손영무는 창구에서 밀려나온 돈다발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엉거주춤한 폼으로 돈다발들을 호주머니 이곳저곳에 쑤셔 넣었다. 그런 자신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는 몇몇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자 손영무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손영무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 손영무는 괜스레 관람대 안의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만 한다면 601배를 적중시켰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딱히 절친하게 지내왔던 사람도 없었고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었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제풀에 꺾여 들떠있던 기분이 잦아들게 되었다. 뿌듯한 마음과 들뜬 기분으로 관람대 안을 이리저리 쏘다녔던 손영무는 7경주가 끝난 다음에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으로 예상지를 펼치고 남은 경주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중시킬 수 있는 저배당이 예상되고 결과적으로도 그렇게 되어질 경주들이 대부분이었다. 손영무는 8경주와 9경주를 지켜보았다. 8경주와 9경주도 손영무가 예상했던 대로 경주는 전개되었고 결과도 그렇게 되었다. 손영무는 다시 10경주를 분석했다. 10경주는 왠지 대부분의 경마예상지들의 인기 1,2위마의 동반입상예상처럼 그렇게 싱겁게 끝날 경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저배당을 형성하고 있는 인기마중 인기2위의 마필은 1900M경주에서는 아직 마필능력의 검증이 안 된 말이었다. 1800M까지는 뛰어난 추입력으로 결승선상에서 앞선 말들을 추월해내며 입상을 해왔지만 그것은 3군경주까지에서나 가능한 능력발휘였다. 2군경주에서는 지금까지 싸워왔던 경주마들보다 더 빠르고 지치지 않는 뚝심들을 지닌 경주마들이 즐비했다. 거리가 1900M로 늘어나 추입마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오직 추입력에만 기대를 걸기에는 무리가 있음에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마필능력의 지나친 과신으로 2착가능마로 예상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선행마로 분류되는 2번마와 4번마도 언제라도 뛰어난 선행력을 바탕으로 경마장용어처럼 혼자 삥 돌아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는 선두력과 뚝심을 겸비한 준마들이었다. 손영무는 이미 대상경주에서의 2회 우승이라는 화려한 경력뿐 아니라 1900M 일반경주에서도 빠른 주파기록으로 우승을 한 검증된 마필능력 때문에 부동의 축마로 인정받고 있는 1번마와 단승식 배당의 인기 4위마인 8번마의 동반입상에 베팅을 해보고 싶었다. 8번마는 2군경주의 숱한 준마들과 겨루면서도 늘 기복 없는 안정적인 주파기록과 최소한 4-5위의 착순정도는 유지하는 강단마였다. 경마예상전문가들조차 1군까지는 무난히 승급할 마필이라고 여기는 마필이었는데 문제는 승군의지였다. 손영무는 그동안의 분석결과로 바로 오늘의 10경주가 8번마의 승군타임이라고 생각했다. 3착 승군타임을 두 번이나 넘겼으나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처지도 못되었다. 어차피 승군을 해야만 하고 1군으로 승군을 해도 좋을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판단했다. 손영무는 1번마와 8번마의 동반입상에 베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서만 지난경주결과들을 검토하고 분석하고, 또 예정된 경주편성들을 분석하고 추리하고 예상했던 손영무는 베팅에 관한한 아직 초보였다. 베팅상한선이 10만원이며 그 이상은 베팅을 할 수 없는 것으로만 알았기에 1번마와 8번마의 복승식마권을 표기하고 10만원과 함께 창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경주가 시작되었고 손영무의 예상대로 강축인 1번마와 함께 역주를 한 8번마가 동반입상을 했다. 배당은 5.7배였다. 손영무는 적중시킨 마권을 다시 창구에 밀어 넣고 57만원이 되어 되돌아 나오는 환급금을 받아, 이미 터질 듯 부풀어있는 호주머니 안으로 쑤셔 넣다가
"손형 경마에 타고난 재주 있는 거 아냐?"
했던 장길수를 떠올렸다.
"그런 사람이 어딨어?"
하고 손영무가 어색한 미소로 처음 대해보는 경마와 베팅에 자신이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을 때 장길수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아냐. 경마가 논리와 추론에 의한 겜블이지만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감각의 게임이라구. 손형도 한번 찍어보지?"
했었다. 손영무가 다시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가 뭘 안다구?"
하고 말끝을 흐렸을 때
"아냐. 한번 해봐!"
하고 유혹을 했던 장길수였다. 하긴 장길수가 그렇게 부추기지 않았어도 손영무는 내심으로 한번 베팅을 해볼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길수가 자신을 도박 같은 것에 기대를 거는 인물이라고 생각할까봐 티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장길수가 자꾸 유혹을 하는 바람에 마침내는
"그럼 한번 해볼까?"
하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었다. 그리고 그저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해본 첫베팅에서 1260배의 고배당을 적중시켰고 그로부터 6개월 만에 다시해본 베팅에서 또 601배나 되는 고배당을 적중시켰다. 그리고 또 한번의 베팅에서 또 적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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