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마의 독주는 4코너를 돌아 결승주로에 들어설 때까지 이어졌지만, 결승선이 가까워질수록 12번마와 12번를 뒤쫓던 마필들과의 거리는 점차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결승선을 이백여미터를 남겨두고는 12번마도 지구력의 한계를 내보이고는 더 이상의 쾌속질주를 못하더니 이내 결승선 100여미터 앞에서는 추입해오는 선추입마들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었다.
"저거 11번이지?"
규태가 선입마들의 틈새를 뚫고 일직선으로 질주해오는 두 마리의 경주마중 하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7번마와 11번마가 무서운 속도로 추진을 해오고 있었고 두 마필에 기승한 기수들은 역동적인 동작으로 혼신을 다해 채찍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대며 일어나기 시작했고 둘도 벌떡 일어났다.
"그래. 11번이야!"
규태가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순간 종원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앞 선에서는 4번마와 6번마와 8번마가 결승선을 불과 오십여미터 남겨두고 선두각축을 벌이고 있었고 바로 그 뒤를 7번마와 11번마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추입해오고 있었는데 앞 선의 경주마들을 따라잡기에는 거리가 너무 짧아 역부족일 것 같았다. 그러나 두 경주마의 추입력은 엄청났고 결승선에서는 거의 대등하게 결승선을 통과해갔다. 와-하는 함성들이 터져 나왔다. 규태도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규태는 분명히 8번마가 앞서 결승선을 통과해 가고 11번마가 최소한의 목차이로 4번과 6번을 따라잡고 2착으로 통과해 가는 것을 보았었다.
"8하고 11이지? 맞지?"
규태가 다시 소리를 지르며 종원을 보았다. 종원은 여전히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대형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규태는 다시 시선을 대형화면으로 돌렸다. 대형화면에서는 결승선을 통과해가는 다섯 마리의 경주마들의 모습이 다시 느린동작으로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8번마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11번마가 4번마를 머리차이정도로 이기며 통과해가고 4번마의 뒤를 6번마와 7번마가 코차이쯤으로 통과해가는 모습이 보여졌다. 다시 함성들이 터져 나왔다. 규태는 배당판을 바라보았다. 42.1배였다. 8과 11의 복승식에 100만원을 샀으니 4,210만원이었다. 지난주의 9.4배의 940만원과 오늘의 42.1배의 4,210만원은, 두 경주에 베팅했었던 500만원을 빼면 4,650만원을 딴 셈이고, 그 돈은 자신이 일 년 동안 경마로 잃었던 돈들을 종원이 단 두 번의 승부로 되찾아주고도 남는 돈이었다.
"그만 가자."
종원이 2층의 출입구를 향해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었다.
"가? 응. 그래..."
하고 얼떨결에 대답은 해놓고도 종원이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망연히 내려다보며 제자리에 서있던 규태는, 가슴속으로부터 불끈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벅찬 감정과 온몸을 휘감아 도는 듯한 야릇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조...종원아!"
하는 비명 같은 외침을 토해내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않고 말았다. 규태의 비명 같은 외침에 주위의 사람들이 일제히 쏠렸고 종원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계단에 풀썩 주저앉은 채 잔뜩 풀린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규태를 올려다보았었다. 규태는 잔뜩 풀린 눈을 한 채 일그러진 얼굴로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주머니에서 9경주에 베팅을 했던 마권뭉치를 꺼내 흔들어 보이며
"이건... 말 도 안 돼..."
하더니
"넌... 넌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경주를..."
하며 종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되내이고 있었다. 종원은 흘낏 쓴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다시 계단을 올라와
"됐어. 그만 가."
하고 주저앉은 규태를 일으켜 세웠다.
"나... 네놈이 무서워..."
하며 규태가 종원을 올려다보며 힘없는 미소를 지어보이자 종원은
"알았어. 그만 가. 나 지금 엄청 피곤해. 가서 잠 좀 자자."
하며 정말 피로에 지친 듯한 눈빛으로 규태의 어깨를 두어번 툭툭 두드려주고는 이내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그래. 그래..."
규태는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종원의 뒤를 따랐다. 둘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주위사람들이 쯪쯪하고 혀들을 차며
"워따! 얼마나 때려 박았기에 저지경이 된겨?"
"손에 든 거 보니께 한 삼사백 되는 모양인디?"
"저게 꽝 되어버린 심정 오죽허겄냐?"
"긍게 경마해서 신세 안 조지는 놈 없당게!"
"쓰발 이거이 경마여? 완전히 야바구제?"
하는 소리들을 뒤로하며 둘은 2층의 출입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