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규태는, 그날 이후 종원과의 약속대로 경마장 출입을 끊었다. 경마장으로의 출입만을 끊은 것 뿐 아니라, 본래의 그의 성격대로 경마는 물론 두 번 다시는 게임이나 놀음 따위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종원도 단 네 번의 경마장 출입과 단 두 번의 승부만으로 규태가 경마에 잃었던 돈을 되찾아준 일이 있은 후, 경마라는 승부게임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동안일 뿐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혹은 스스로 원해서거나 원하지 않았음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드는 삶에서의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삶에서의 함정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파놓은 수렁 속으로 끌어들이거나 밀어 넣기도 하고, 자신 스스로 만들어내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운명적이기도 한다. 종원이 경마를 알게 된 것은, 승부가 걸린 게임이라면 어떤 것이든 간에 강한 승부욕을 갖고 있던 그로서는, 경마라는 새로운 게임을 알게 됨으로써 그의 삶에 있어서 스스로 또 하나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이었는데, 그가 또 하나의 삶에서의 함정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날로부터 훨씬 후의 일이었다.   

종원이 마동식의 오피스텔방에서 찾아낸 돈 가방을 세형에게 넘겨주고 난 후, 다시 오상구의 하우스로 되돌아간 것은 밤 9시가 훨씬 지난시간이었다. 종원이 오피스텔의 하우스 입구 쪽 방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둘러 앉아 케이블방송의 액션영화를 보고 있던 청년 둘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했고 봉주도 종원을 보고 일어나
"어디갔다 온 거요?"
하더니 종원의 팔을 끌며 복도 반대편의 비상구 쪽으로 끌고나갔다.
"아직 놈이 눈치 채지 못했지?"
종원이 비상구문을 밀치며 물었다.
"아직 게임중이요. 개자식 오늘은 끝발이 좀 오른다고 연신 히죽대고 있구만이라. 정교수가 어찌케 해볼라고 해도 혼자서는 잘 안 되는 모양입디다."
봉주가 뒤따르며 비상구문을 닫았다.
"자리 있어?"
하고 종원이 담배를 꺼내 물자
"게임하게라우?"
하며 봉주가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주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는 게 좋잖아?"
종원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어 보였다. 봉주는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상구형은?"
"모르겄소. 아까 전화 받고 나간 모양이든디 누구 손님만나는 갑제라."
"명석형한테서는 다시 전화 없었지?"
"없었든거 같습디다."
"왜? 나갔다 왔어?"
"예. 나도 후배들이 찾아와서 두어시간 나갔다 왔는디라."
"그럼 상구형 나가는 건 못 봤겠네?"
"여그서도 한자리에 함께 있는 시간 얼마 안돼라. 여그 일은 모다 나헌티 맡겨놓고 볼일 보러 나다니니께라우."
종원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구석자리에 놓여있는 물 담긴 커다란 깡통 안에 피우던 담배를 던져놓고 
"칩 좀 보내줘."
하며 다시 비상구 문을 열었다. 봉주도 피우던 담배를 깡통에 내던지고
"한번 흔들어놓으시오."
하며 종원의 뒤를 따랐다. 종원과 봉주가 복도 끝 쪽의 방으로 들어서자 아래층의 세 테이블과 위층의 한 테이블에서는 한창 카드게임들이 진행 중이었고 방안은 게임에 몰두해있는 사람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방안에서 서빙을 하고 있던 청년들이 재빨리 허리를 꺾어보이고는 둘에게 다가와 곁에 섰고 봉주는 그중의 한 청년에게 귓속말을 했다. 청년은 이내 다시 허리를 꺾고는 종원을 구석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구석의 테이블에서는 마동식과 장지점장과 허사장과 정교수가 막 한판을 끝내고 카드를 섞고 있었다. 봉주의 말대로 마동식 앞에는 플라스틱 칩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장지점장이 종원을 흘낏 올려다보고는 
"어이고 언제 오시나 한참 기다렸구만 왜 이제 오시나?"
하며 반색을 했다. 종원이
"예. 일이 있어서 서울 좀 나갔다 왔습니다."
하자 장지점장은 다시
"어쨌든 잘 왔소. 앉아요! 어제 못 다한 승부 다시 한 번 해봐야지?"
하며 자신의 의자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청년이 얼른 빈 의자 하나를 들고 와 장지점장과 허사장사이에 놓았다. 종원은 꾸벅 해보이고는 의자에 앉았다. 허사장은
"이 친구 어제 하는 거 보니까 선수 같던데..."
하며 상투적인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