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구는 다시

“어차피 너에 대한 짐도 벗어내야 할 테고... 네 짐이 벗어져야만 조직차원에서도 백태삼놈들과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하게 될 테고... 마반장놈에 대한 응징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하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종원은 오명석을 만났다. 호텔커피숖의 구석진 자리에 혼자 앉아 있던 오명석은, 돈가방을 든 오상구와 종원이 그 앞에 가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하자 미간을 움찔했다. 둘은 돈가방을 테이블 한곳에 가만히 내려놓고 오명석 앞에 부동자세로 섰다.

“앉아.”

오명석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둘은 조심스레 오명석 앞에 앉았다. 몇 걸음 뒤쳐져 커피숖 안으로 들어서던 봉주와 세형은 오명석을 향해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한 후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는데 둘을 에워싸기라도 하듯 조직원들이 제각기 다른 테이블들에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차부터 마셔”

오명석이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고 둘은 커피를 주문했다. 잠시 후 커피가 나오고 종원이 몇 모금 마실 때까지 오명석은 묵묵히 종원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오명석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그리고   

“정말 어처구니 없구만...”

오명석은 종원의 결코 짧지 않은 얘기를 다 듣고 난 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종원은 조용히 고개만 떨구고 있었고 오상구는 오명석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오명석의 주먹이 날아올 것만 같았다. 오명석은 조직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답지 않게 귀티가 나고 핸섬한 용모에 연한 빛깔의 정장을 즐겨 입고 다녀서 누구라도 그를 대그룹의 엘리트중역 정도로 여길 정도였다. 함부로 주먹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워낙 냉혹했기 때문에 한번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기 시작되면 상대가 누가 되었든 그날로 반죽음이 되었었다. 그가 상대를 제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일분을 넘기지 않을 만큼 그의 몸놀림은 빨랐고 그의 주먹과 발은 강했다. 그래서 조직 내의 선후배들은 물론 그의 명성을 알고 있는 다른 조직의 주먹들도 그와의 맞대결은 피했었다. 오명석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종원을 쏘아보고만 있었다.

종원이 김팔봉의 조직에 들어가게 된 것은 오명석 때문이었었다. 오명석에게 스카우트 되어 김팔봉의 조직으로 들어가게 된 종원은 애당초 싸움실력이 특출하다거나 내세울만한 특기가 있는 건달은 아니었었다. 그저 위트와 재치가 가득담긴 입담으로 조직원들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조직에서 내린 일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빠른 두뇌회전과 판단력으로 뒤탈생기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해냈었기 때문에 김팔봉은 이내 종원을 신뢰했었고 조직 간의 패싸움이나 영역간의 전쟁이 아닌 사업상의 일에 대해서는 늘 오명석을 통해 종원을 긴요하게 활용했었다. 조직 내에서의 오명석의 서열이 세 번째였기 때문에 조직원들은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오명석에게 깎듯이 경어를 썼지만, 종원만은 사석에서는 마치 막내 동생이 응석을 부리듯이 오명석에게 경어도 빼고 허물없이 지내왔던 사이였다. 종원이 조직생활에 차츰 익숙해져갈 무렵에, 정치적인 후광을 등에 업고 막대한 사업이익권이 걸려있는 지방도시 한지역의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지숙의 아버지 나일환이 자신과 가족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사업상 상호협력을 하고 있던 김팔봉에게 자신과 가족의 신변보호를 요청하게 되었는데, 종원이 다른 조직원 둘과 함께 나일환의 외동딸인 지숙의 신변보호의 임무를 맡게 되었었다. 그 임무도 오명석이 종원을 배려해서 내린 임무였다. 그때 지숙은 대학무용과 이학년이었다. 종원이 신변보호임무라는 명분으로 다른 조직원들과 하는 일이란 것은, 고작해야 지숙이 눈치 채지 못하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집 앞에서부터 지숙을 뒤따르거나 강의실 밖 한곳에서 시간을 죽이며 서성이거나 무용연습실 밖의 창문 틈으로 춤추는 지숙을 훔쳐보거나 지숙이 학교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뒤를 따라다니는 게 전부였었다. 그러나 며칠 가지 않아 종원은 그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었다.

“이유가 뭐야?”

종원이 그때까지 조직에서 하명한 일에 대해 한 번도 거부 한 적이 없었던 것을 잘 알고 있던 오명석은, 종원이 자신을 찾아와서 지숙의 신변보호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종원을 보며 물었었다. 종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특유의 넉살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며

“아무래도 그 여자애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아서요.”

했었다.

“뭐야?”

하고 오명석이 다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종원은

“머지않아 그 애도 날 좋아하게 될 텐데 보디가드와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좀 웃기잖아요? 영화도 아니고.”     

하며 너스레를 떨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