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대답대신 특유의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명석은 종원의 어색한 미소의 의미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하더니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청년들에게 눈짓을 했다. 청년 둘이 벌떡 일어나 다가와 허리를 꺾었다. 오명석은 턱짓으로 테이블 한곳에 놓아둔 돈가방을 가리켰다. 청년 둘은 다시 허리를 꺾고 돈가방을 집어 들었다. 오명석은 고개를 떨군채로만 있는 종원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 돈 회사로 되돌려주고 넌 이번 일에선 빠져. 네가 이번 일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내가 큰형님에 알아서 말씀 드릴 테니.”
하고는
“경마로 죽은 규태 몫만큼 더 만들어 영숙이에게 건네주려고 했다는 말은 더 이상 꺼내지도 마. 모두 네놈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알 테니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청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종원과 오상구도 엉거주춤 일어났다.
“어쨌든 네놈 재주는 좋아. 종원이 너 아니면 어떻게 마반장이란놈이 숨겨둔 돈가방을 찾아낼 수 있어? 하여튼 넌 엉뚱한 놈이야. 아니 별종이야. 별종!”
오명석은 어이없다는 미소로 종원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커피숍을 나섰다. 청년들이 우르르 뒤따라 나서자 커피숍 안은 종원과 오상구 그리고 저만치 앉아있던 세형과 봉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가는 오명석의 뒤에 대고 허리를 꺾고 있던 봉주와 세형은 오명석의 모습이 커피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나서야 허둥대며 종원쪽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세형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종원에게 묻자 쓴 표정을 짓고 있는 종원 대신 오상구가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고 돈 되돌려드렸으니 큰형님한테는 명석형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우리도 그만 가자.”
하며 앞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종원형헌티는 아무 책임 안 묻겄네요?”
봉주가 바싹 뒤따르며 물었다.
“종원이나 되니까 마반장이란 놈하고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돈도 되찾게 된 거라고 했으니 알아서 하시겠지.”
오상구가 대답하며 흘낏 뒤따르는 종원을 돌아보았다. 종원은 여전히 쓴 표정을 지었고 세형이 그런 종원을 흘낏 보고 어깨를 툭 치며
“차라리 잘 된 거지 임마. 괜스레 시간 더 끌었다가 네놈 신상까지 해로워질 뻔 했어. 경마로 돈 잃었어봐 그때가선 어떻게 수습을 할 거야?”
했다. 종원은 다시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분간 나하고 있을래?”
하우스로 되돌아가는 차안에서 오상구가 종원에게 물었다. 종원은 잠시 두 눈을 껌뻑이다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후에야 때늦은 규태의 장례식이 있었다. 규태의 죽음에 대한 수사도 진전이 없었고 사체에 대한 부검도 늦어져 사체인양이 미뤄졌기 때문이었다. 규태가 고아였던 까닭에 가족이라고는 영숙뿐이었고 조직을 배신한 대가로 맞이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조직에서도 공식적으로 장례를 관장할 수 없어 오명석이 김팔봉의 묵인 하에 상주가 된 채 규태와 절친했던 선후배 몇몇만이 참석한 초라하고 조촐한 화장식이었다.
“이제 마음대로 흘러 다니며 아무데나 갈 수 있게 됐네. 그래 가봐!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곳들 다 가봐.”
종원이 규태의 유골을 강물에 흩뿌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영숙이 다시 소리 높여 오열을 했다.  
“그나마 규태놈이었기에 큰형님이 이만큼이라도 배려해주신 거다.”
오명석이 돌아오는 차안에서 말했다. 종원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명석은 긴 숨을 몰아 내쉬고는
“백태삼쪽하고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합의를 했다. 어차피 한 뿌리에서 갈라졌던 조직이었기 때문에 이번 일 정도로 전쟁을 벌일 입장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지.”
했다. 종원이 나직이
“이번 일 정도라구요...”
하며 쓴 미소를 지어보이자 오명석은
“어차피 잘못은 우리 쪽의 규태놈에게 있었어.”
하고 단호하게 말하고는
“제 놈들 짓이었다고 까놓고 얘기하는 건 아니면서도 규태놈 때문에 그쪽 애들 셋이 걸려든 것에 대한 응징을 한 것뿐이라는 태돈데 우리로써도 전쟁을 벌일 게 아니라면 방법이 없어. 규태놈의 죽음이 서로 전쟁을 벌일 만큼의 명분이 되지도 않아.”
했다. 종원은 아무대답도 없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휙휙 스쳐 지나쳐가는 차창 밖의 한곳에서 금세라도 규태가 히죽 웃으며 불쑥 튀어나와 자신에게 내달려올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