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가면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나시는 건가요?”
종원이 물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러길 바랍니다.”
순간 정교수의 움푹 들어간 두 눈이 반짝 하는 것 같았다. 종원은 그런 정교수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러길 바란다는 거는... 시방은 서로 연락이 끊긴 상태란 야그 같은디요?”
봉주가 정교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정교수는 잠시 침묵을 하다가
“연락 끊긴지 오래 됩니다.”
했다. 봉주가 다시
“연락도 끊겼다먼서 파리 가서 으찌케 찾을라고 그라요?”
하고 되묻자 정교수는 쓴 미소를 짓고는
“꼭 그 때문에 가려는 건 아닙니다.”
했다.
“난 안 돌아와.”
규태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종원은 눈을 감았다. 규태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눈을 떴다. 
“가시고 싶으면 가셔야죠.”
종원이 정교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교수도 움푹 팬 채 촉촉이 젖은 두 눈을 반짝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만 가시죠. 4경주 끝났겠네요.”
종원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교수와 봉주도 뒤따라 일어났다.
셋이 다시 장외지점에 들어섰을 때는 5경주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셋이 자리로 돌아가자 앉아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일어나더니 그중 한 사내가 정교수와 귓속말을 주고받고는 반으로 접은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정교수는 반을 접은 종이를 펼쳐 흘낏 보고는 다시 반으로 접어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종원의 눈치를 살폈지만 종원은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정교수는 종원에게 몸을 기울여 나직이
“나중에 배당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미리 6경주 예매를 부탁해두었었습니다.”
했다. 종원은 여전히 시선을 모니터로 향한 채 잠시 두 눈만 껌벅이다가
“얼마나 샀습니까?”
하고 물었다. 정교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히 말씀드리죠. 쏘스 날아온 10번을 머리로 4번과 9번에 한 장씩 샀습니다.”
했다.
“백씩 말입니까?”
종원이 다시 물었다. 정교수는 다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천씩 샀습니다.”
했다. 종원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과 동시에
“뭐라고라?”
하고 봉주가 소리를 높였다. 종원이 얼른 한손으로 봉주의 무릎을 눌렀다. 봉주는 애써 소리를 죽여
“그러다가 안 들어오먼 우짤라고 그라요?”
하며 정교수를 보았다.
“그럼... 할 수 없는 거죠.”
정교수가 쓴 미소를 지었다.
“사설경마 하신 겁니까?”
종원이 나직이 물었다.
“예.”
정교수가 짧게 대답했다.
“그 종이가 입금푭니까?”
종원이 다시 물었다.
“창구를 돌면서 이 천 사긴 벅찹니다.”
정교수가 말했다.
“거래 해본 적 있습니까?”
종원이 다시 물었다. 정교수는 다시
“믿을만한 뎁니다.”
했다. 종원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봉주가 곁에서
“맞기만 허먼사 돈이야 못 받아 내겄소? 안 주먼 애들 불러다가 싹 묻어불제?”
하면서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였다. 정교수는
“말씀드렸듯이... 박형이 한 마리만 잡아내 주십시오. 10번에 그 말을 엮어서 마지막으로 한 장 더 쏘겠습니다.”
하고 종원에게 다시 나직이 말했다. 종원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 돈 만드시느라 상구형 하우스에서 게임 해 오신 겁니까?”
하고 물었다. 정교수는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박형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했다. 종원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