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수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 후 애써 둘의 시선을 피한 채
“그림을 좀 그리는 편이었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았습니다.”
했다. 봉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라먼 교수님 계속 허시지 그러셨소?”
하고 다시 물었다. 정교수는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나를 무척 따랐던 여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선생과 제자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선을 넘게 되었죠.”
했다. 봉주가 흘낏 종원을 보았다. 종원은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정교수는 다시 길게 담배를 빨아들인 후
“결코 제가 선생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강압적으로 요구를 했던 것도 아니고 또 그 여학생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유혹을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고는 다시 길게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남녀사이라는 게 참 묘해서 추구하는 게 같을 땐 선생과 제자사이도 나이차이도 망각하게 되죠.”
정교수는 나직하면서도 또렷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서로 사랑했었다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둘이서 파리로 그림공부를 함께 떠날 계획을 세울 정도로 발전이 되었죠. 그러나 그런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그 여학생과의 일반적 판단기준으로서의 부적절한 관계는... 다른 여학생들과 동료교수들의 시선과 입을 통해 학교문제로까지 발전되었고... 결국 나도 그 여학생도 학교를 그만 두어야했습니다. 그때 난 별거 중이었던 아내와 이혼소송 중이었는데 아내에게도 그 사실이 알려져 아내와의 이혼소송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결국 혼자 파리로 떠났고 난 이렇게 그림을 놓고 몇 년 째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라먼 인자는 아예 그림 그리는 것은 손 놓으신 거요?”
봉주가 어색한 침묵을 깨트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창작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하는 건데 창작에 대한 열정을 잃었으니 아무것도 그려낼 수가 없게 된 셈이죠.”
정교수는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다시 빨아들이다가 더 이상 빨리지 않자 손가락에 걸쳐진 담배꽁초를 흘낏 내려다보고는 
“다시는 그림을 계속 할 수 있을 지...”
하고 말끝을 흐리며 재떨이에 비벼 껐다. 봉주는 킁-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나겉이 못배운 놈이사 마땅히 헐 일 없어 요딴식으로 청춘 보낼 수밖에 없다지만 정교수님은 배운 것도 많고 재능도 있으시고 헝게... 또 작심허기에 따라 얼매든지 허고잪은 일 계속 허실 수 안 있겄소? 마음 다잡아묵고 다시 그림 그리시오. 왜 고만헌 일로 아까운 재주 썩히고 허송세월만 보낸다요?”
했다. 정교수는 다시 쓴 미소를 지었다. 봉주는 다시
“으쨌든지간에 그림 계속 헐 궁리나 허시제 우쩌다가 카드같은 거에는 손을 대기 시작했소?”
하며 정교수를 보았다. 정교수는 잠시 두 눈만 깜박이더니
“이러저러한 마음속의 갈등들을 다스리지 못해서 그런거죠.”
하며 나직이 한 숨을 내쉬었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내가 괜히 쓸데없는 얘길 했나보네요.”
정교수가 움푹 팬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종원이 정교수를 보지 않은 채 조심스레
“큰돈이 필요하시다는 게...”
하자 정교수는 이내
“박형이 짐작하시는 대로 돈 좀 만들면 그동안 지내오면서 진 빚들도 좀 갚고... 파리로 갈까 해섭니다.”
했다. 종원은 순간 규태를 생각해냈다.
“떠날 거다.”
그렇게 말했던가? 아니
“갈 거다.”
했었던가? 규태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가다니? 어딜?”
하고 물었을 때
“전부 다!”
규태가 애써 힘주어 대답했었다. 종원이 놀리듯 피식 미소를 지어보이며 
“언제 갈 건데?”
하고 물었었다. 규태는 잠시 침묵하더니
“한 건 하면.”
하고 대답했었다.
“한 건 하면 나도 갈 수 있어!”
하고 소리를 높이고는 다시 놀리 듯
“그 많은 델 다 돌아보고 오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 지나 알아?”
했었다. 순간 규태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난 안 돌아와.”
했었던 규태의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