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와 가장 절친했던 선배이자 한 팀이었던 규태가 갑자기 저러는 까닭도 몰랐고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찾았을 때에야 규태가 타고 도망간 차의 조수석에 핸드폰을 내던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만치서 트럭 한 대가 달려왔다. 종원이 손을 흔들며 세우려는데 트럭은 세울 기미도 보이지 않고 휭하니 지나쳐 가버렸다. 종원이 어둠저편으로 달아나는 트럭의 뒤를 향해 팔뚝을 걷어 올려붙이며 감자를 먹였다.
"개자식!"
종원은 달아나는 트럭의 운전수에게 하는 것인지 자기를 이 삭막한 곳에 내던져 놓고 달아나버린 규태에게 하는 욕인지 모를 욕설을 내뱉으며 아직 부석부석 비가 내리는 한적한 밤 도로를 털레털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발주대 밖으로 빠져나갔던 경주마들이 하나씩 발주대에 다시 들어서고 8번마를 발주 제외시킨 채 경주가 속행된다. 출발신호와 함께 경주마들이 뛰쳐나온다. 사람들이 어느 말이 앞서는지에 대해서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보다 선행마들로 분류되었던 5번, 6번, 12번마들이 예상대로 앞서나오기 시작하자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들로 지켜본다. 종원은 이번 3경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전광판에서 보여지는 경주마와 기수들의 자리다툼을 흘낏 바라보고는 천천히 관람대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겨간다. 진동으로 설정해 둔 핸드폰이 양복 속주머니에서 요란스레 진동을 해댄다. 핸드폰을 꺼내 발신번호를 확인하고 천천히 핸드폰폴더를 연다.
그 시간에 백태삼의 사무실에서는 흐릿한 스탠드 불빛 아래 백태삼이 소파에 푹 파묻힌 채 핸드폰을 들고 있었고 그 곁에는 건장한 체구의 박만규가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나 백태삼인데... 김회장 바꿔!"
백태삼은 애써 부드러운 톤으로 말을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득 섞여 있었다. 백태삼이 전화를 한 상대는 김팔봉의 부하 오명석이었다. 김팔봉은 하우스 안에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팔봉이 천천히 카드를 집어 들고 맞붙인 카드를 천천히 쪼여보았다. 프러쉬가 되어주길 기대했던 기대감이 일그러졌다. 카드게임 상대들이 베팅을 시작했다. 김팔봉이 칩을 만지작거리며 끙- 하는 신음을 토해내는데 오명석이 다가와 그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이며 핸드폰을 건네줬다. 카드게임 상대들이 일제히 못마땅한 표정들을 지으며 김팔봉을 바라보았다. 김팔봉이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양해를 구했다.
"김팔봉입니다... 뭐라구?"
김팔봉의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무슨 소리요? 왜 우리가 연막을 피워?"
하더니 상대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는 김팔봉은 이내 목소리의 톤을 낮췄다.
"물건은?"
하더니
"알았소!"
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뱉고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핸드폰폴더를 닫고서 들고 있던 카드를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 카드게임 상대들이 그런 김팔봉을 흘낏 보고는 베팅을 이어갔다. 김팔봉은 다시 끙- 하고 신음을 내뱉고는 오명석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그놈들 찾아봐!"
했다. 오명석이
"예."
하고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김팔봉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감았다.
김팔봉의 부하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짐작되는 곳들은 모두 쑤시고 다니며 규태와 종원의 행방을 추적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둘의 행방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팔봉이 그런 보고를 받은 것은 포커하우스에서 큰돈을 날리고 난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였다.
"한 놈은? 이 자식들이 개수작을 벌이고 있어? 종원이 놈에게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으면 규태 그놈 꼭 찾아내라고 해! 사흘 여유 주겠다고 해. 사흘이야!"
김팔봉은 핸드폰 폴더를 닫으며
"이 새끼들! 내가 제 놈들에게 어떻게 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른 새벽, 마치 사람들이 살지 않는 세상이라도 되는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길게 뻗은 고속도로만 끝이 없을 것만 같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서부터 뿌옇게 안개를 걷어내며 여명이 밝아오는데 당장이라도 분해되어 산산조각이라도 날듯 한 낡은 차 한대가 요란스레 굉음을 울려대며 낙타 등처럼 굽어진 도로 밑에서 불쑥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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