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이라도 분해 되어 산산조각이라도 날듯 한 낡은 차는 다시 낙타 등처럼 굽어진 도로 저편으로 쓱 빠져들었다가 다시 솟구쳐 오르기를 반복하며 안개 가득한 새벽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고 그 차안에서는 카세트에서 들려나오는 광란에 가까운 괴음 같은 록뮤직에 맞추어 종원이 두 손으로 핸들을 쾅쾅- 두드려대며 악악- 발악하듯 괴성을 질러댔다. 그것은 자신을 내던져놓고 달아난 규태에 대한 원망의 외침이기도 했고, 앞으로 자신에게 밀어닥칠 두려움에 대한 저항의 외침이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조차도 될 대로 되라 식의 타고난 낙천적인 외침이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침, 벽에 영화배우사진들과 영화포스터들이 잔뜩 붙어있는 아래 어지러이 흐트러져있는 장신구들 틈 사이에 놓여진 세형의 핸드폰이 연신 신호음을 울려댔다. 이른 아침부터 정숙과 섹스행위에 몰입을 하고 있던 세형이 손을 내밀어 핸드폰을 집어 들고 발신자번호를 확인했다.
"누구야?"
정숙이 물었다.
"모르는 번호야."
하고는 세형이 이내 핸드폰을 내동댕이치고 깨어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정숙을 짓누르며 다시 애무를 시작하는데 핸드폰이 다시 문자메시지 음을 울려댔다. 세형이 신경질적으로
"어떤 새끼야? 아침부터?"
하며 다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고 버튼을 눌러 문자메시지를 읽고는
"어떤 새끼가 십팔 십팔을 치고 있어?"
하며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빨리 빨리가 아니고?"
하며 정숙이 잔뜩 열 오른 얼굴로
"호호 되게 재밌다. 우리가 뭐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하고는 간드러지게 웃어댔다. 세형이 결국 자신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던 정숙의 팔을 풀어내며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앉아 핸드폰을 들고 버튼을 눌러댔다. 한참을 신호음이 울리고 나서야
"여보세요."
하며 목쉰 소리를 하는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받았다.
"거기 어디에요?"
세형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요?"
남자가 되물었다.
"내 핸드폰에 번호가 찍혀서 전화하는 겁니다. 누구세요?"
세형의 언성이 높아지자
"아! 잠시 핸드폰 좀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준 겁니다."
하며 목쉰 소리를 하는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도 짜증스런 투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씹팔씹팔이라고 문자메시지 보낸 놈 좀 바꿔주세요!"
세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상대가 바뀌었고
"나다. 종원이!"
하는 종원의 음성이 들려나왔다.
종원과 약속한 카페 마돈나로 요란스런 분위기로 치장한 세형이 들어섰다. 세형은 이른 아침이라 손님도 없는 카페 한 구석진 곳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종원을 이내 발견하고 다가갔다. 종원은 다가오는 세형을 보며 히죽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랜만이다. 요즘도 엑스트라 출연 하냐?"
"임마! 엑스트라가 뭐야? 이제부턴 자막에 이름 뜨는 배역만 한다."
세형이 종원 앞에 앉으며 미간을 찌푸려보였다. 세형은 단역배우였다.
"배우가 많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너 같은 놈 이름 올려줄 배역이 남아있는 거 보니?"
종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다신 안 나타날 것 같더니 웬일이냐?"
종원의 너스레는 아랑곳 않고 세형이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종원이 흘낏 주위를 둘러보고는
"혼자 왔지?"
하고 새삼스레 긴장된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럼 혼자 오지 임마? 혼자오라며?"
하고 세형이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종원이 목소리를 낮추고
"규태형 찾으러왔다."
하자 세형이 뜨악한 표정으로
"규태형은 왜?"
하고 되물었다.
"튀었다."
종원이 낮은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튀다니?"
세형이 더욱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다가 이내 상황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언제?"
하고 나직이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