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규태를 바라보자 
"난 전과가 여섯에다가 수배를 받고 있는 죄목만 해도 셋이나 된다. 이 땅 위에선 발붙이고 살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
규태가 절망감 가득한 소리로 말했었다. 종원은 길게 담배를 빨아들이고만 있었다.
"그래서 마동식과 타협하기로 했었다. 마동식이, 큰 건 하나를 자신에게 넘겨주면 내 전과들을 말소해주고 내가 어디로든 자유로이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서..."
규태는 잠시 하던 말을 멈추더니 스스로 격앙되어 벅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어깨를 한번 펴고 긴 숨을 들이셔서 한 호흡에 뱉어냈었다.
"그래서 그날 정보를 제공하고 돈을 빼돌려 마동식에게 건네 준 거요?"
종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며 묻자 규태는 대답대신 다시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었다.
"형 하나 자유로이 살아보겠다고...?"
종원의 소리가 조금 높아지자
"나도 누군가를 대신해서 삼년을 썩었던 적이 있었다."
하고 규태가 소리치며 종원의 말을 잘랐었다. 그리고는
"이 땅을 떠날 방법이 없었다. 다른 방법이..."
하고 다시 길게 담배연기를 뱉어냈었다.
"그런데 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거요?"
종원이 다시 소리를 높이자 규태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어금니를 깨물더니"마동식이란 놈에게 당했어. 놈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했었다. 종원도 마동식을 알고 있었다. 종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세상에 믿을 놈이 없어서 짭새를 믿수?"
하자 규태는 망연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종원은 순간 맥이 풀렸었다.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던져 비벼 끄고 괜스레 사방을 둘러보며 고개를 저어대다 한참 후에야
"저쪽 애들이 형을 찾고 있는 모양입디다."
했었다. 규태는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종원이
"이제 어떻게 할 거요? 하와이, 싸이판, 마우이, 호주, 싱가폴... 그래 스위스! 알프스엔 안 갈 거요?"
하고 묻자 규태는 그저 씁쓸한 미소만 지었다. 종원이 다시
"싸나이가 한번 태어났으면 해보고 싶은 거나 실컷 해 봐야지?"
하더니 다시 
"형! 가! 가면 될 거 아냐?"
하고 소리를 질러댔었다. 종원은 여전히 체념 가득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고는
"네 꿈속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가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이건 현실이야..."
하더니
"난 이미 각오가 되어있다."
하고는 다시 어금니를 꽉 깨물었었다. 그 표정은 정말로 어떤 각오가 되어있는 듯한 냉정한 표정이었다. 종원이
"차라리 큰형님한테 용설 빌어. 큰 형님 대신에 삼년도 썩었었잖아?"
하는데도 규태는 다시 체념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었다. 종원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에이 씨팔!"
하고 자신에게 하는 건지 규태에게 하는 건지 모를 욕지거리를 해대며 나동그라져 있는 의자를 다시 발로 걷어찼었다. 순간 규태가 허리춤 뒤쪽에서 권총을 꺼내 종원 앞에 불쑥 내밀었다.
"기억나니? 언젠가 너와 내가 털었던 벤츠 케비넷 안에 있었던 거다."
하고는
"이제 내겐 필요 없어진 거 같다. 이 총으로 박동식 그놈의 골통을 쏴버리고 싶지만...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으니..."
하고 다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체포되거나 백태삼 놈들에게 개죽음이라도 당하게 되면... 네가 박동식에게 복수해줄래?"
했었다. 종원이 규태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꼭 복수 해줘. 그리고... 네 형수... 영숙이... 잘 보살펴 줘."
하며 어둠 저편을 향해 시선을 돌렸었다. 종원은 그때, 시선을 돌리는 규태의 눈동자가 반짝하는 것을 보았었다. 규태는 시선을 돌린 채 종원에게 다시 총을 내밀었었다. 종원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총을 받았었다. 규태는 종원의 손을 꼭 쥐더니 어둠 저편의 먼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몰아 내쉬었었다. 그것이 종원이 규태를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되었다. 종원이 규태가 은신해있는 여인숙을 빠져나온 한참 후 규태는 죽었다. 규태를 죽인자들은 백태삼의 조직원들이 틀림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