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자! 좀 자고 나면 낳아질 거야."
지숙이 가늘고 하얀 손을 뻗어 종원의 감긴 눈을 살며시 덮고서
"내가 재워줄게."
하고 속삭이며 종원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깊은 입맞춤을 하자 종원은 이내 잠이 들었었다. 잠이 들기까지,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떠오르는, 자신과 이미 죽은 규태와 마동식이라는 형사가 함께 뒤얽힌 이번 사건에 대한 기억들 때문에 한참동안을 시달리며 신음했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방법만 알아낼 수 있다면..."
종원이 혼잣말처럼 중얼 거리며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자 지숙은 종원을 힐끗 보았었다. 종원은 의자 등받이를 뒤로 재끼고 몸을 뉘였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
지숙이 물었었다.
"모든 게 다."
종원이 지친 음성으로 나직이 대답했었다. 지숙은 망연히 종원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또 뭘 하고 다니는지 또 안 물어?"
종원이 물었었다.
"물어봐도 안 가르쳐 줄 거잖아?"
지숙이 되물었었다. 종원은 대답대신 눈을 감았었다.
"한숨 자! 좀 자고 나면 낳아질 거야."
지숙이 가늘고 하얀 손을 뻗어 종원의 감긴 눈을 살며시 덮었었다.
"내가 재워줄게."
지숙이 속삭이며 종원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깊은 입맞춤을 했었다.
그리고 종원은 잠에서 깨어났다. 살며시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안이었다. 지숙이 곁에 있었던 것 같은데 하고 지숙을 찾았다. 그러나 지숙은 보이지 않았다. 잔뜩 웅크린 몸을 일으켜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차는 황량한 벌판 위에 세워져있었다. 멀리서부터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른 새벽의 찬 공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자 굳은 몸을 떨쳐내고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지숙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지숙의 모습은 없었다. 잠든 동안,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다 살며시 차에서 빠져나갔나보다고 생각했다. 잘 가기나 했을지 택시잡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이제는 지숙을 놓아줄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담배연기를 흠뻑 들이마시고는 마치 떠나는 지숙을 바라보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황량한 벌판 저쪽을 향해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담배연기들이 새벽안개와 바람에 뒤섞여 흩뿌려졌다.     
"교수실로 찾아갔었어."
하고 지숙이 말했었다.
"나영이라는 애하고 얘길하고 있더라구. 왜? 봤었잖아? 자기한테 유별나게 많은 말을 건넸던?" 
하며 지숙이 종원을 보았다. 종원이 지숙을 찾아 학교에 갔던 날 만났던 여학생들 중 하나를 말하는 것 같았다. 종원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지숙이 교수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영은 마교수 곁에 바싹 다가앉아 있다가 들어서는 지숙을 보고는
"그럼 전 가볼게요. 교수님!"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교수는 지숙을 흘낏 보고 당혹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영이 다시 
"이따 봬요! 오늘 저녁식사 무척 기대돼요."
하며 손짓을 하고 돌아서다 지숙과 시선 부딪히자 나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서있는 지숙에게 쎌쭉 미소를 짓고 윙크까지 해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마교수가  
"에... 이번 뉴욕 대학... 유학 케이스는..."
하며 더듬대자 지숙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제 대신 나영이로 바꿨나요?"
하고 물었다. 마교수는 이내 거만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며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숙이 다시 
"그럼... 컨텐포러리 무용단은요?"
하고 묻자 마교수는 
"아무래도 지숙이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적당한 학생을 찾고 있는 중이야."
했다. 지숙이 잔뜩 비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개새끼!"
하고 내뱉자 마교수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뭐야?"
하고 소리를 높였다. 지숙이  
"너 같은 놈을 인간쓰레기라고 하는 거야!"
하고는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해 보이는 마교수를 뒤로 하고 교수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