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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성장가도 달려온 한국마사회 반세기 그 역사와 미래
9월 28일 한국마사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반세기의 역사를 넘어서게 됐다. 해방과 전란, 그리고 경제성장을 위해 전국민이 아픔을 같이하던 시기를 함께 했던 경마는 이제 명실공히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레저스포츠로 발돋움 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한국마사회의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의 뒤안길에 수놓여있는 한국경마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한편, 현재의 한국경마 현주소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편집자주〉

한국경마의 모태기

경마가 이 땅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그 시기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다.
말이란 동물이 운반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경마가 모태된 것이라고 본다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말이 운반 및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면서 자연히 말의 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소유주들의 경쟁심으로 마필간 경쟁은 불가피 했다.
그러나 중세기에 펼쳐졌던 경마에 관한 연구는 미비한 상태로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경마계에선 1898년 외국어학교 연합운동회에서 시행된 학생나귀 경주를 그 시초로 보고 있다.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으로 경마가 시행되었다. 1907년 한강 백사장에서 기병경마가 시행된 것을 계기로 1914년에는 조선공론사 주최로 조선경마대회가 용산 구연병장에서 시행되었다.
1922년에는 사단법인 조선경마구락부가 설립인가를 받으면서 그해 5월 20일 경마를 시행함으로써 본격적인 근대경마가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현재와 같이 마권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은 1923년으로 당시 경성 춘계 경마대회에서 승마투표를 공인하며 경마에 돈을 걸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일제아래 신음하던 국민들은 경마에 열의를 보임으로써 전국적으로 경마구락부가 활화산 처럼 생겨나게 되었다. 1924년 평남레이스 구락부가 설립인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대구경마구락부, 국경(신의주) 경마구락부, 부산경마구락부, 군산경마부락부 등이 속속 생겨나 전국적인 경마시행이 이루어졌다.
1928년에는 신설동 경마장(경성경마회)이 준공되면서 신설동 경마장 시대가 개막되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 지방의 경마구락부를 한데 어우룰 수 있는 조선경마회가 1933년 1월1일11부터 활동을 했고, 1942년 조선마사회로 명칭을 바꾸면서 초대회장으로 일본인 시뢰원조가 임명되었다.
이 시기가 한국경마의 모태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일본인하에 주도된 경마는 크게 번성하지는 못했다. 1941년 군산 경마장이 운영난으로 폐쇄된 것을 계기로 신의주, 웅기, 함흥, 청진 경마장이 3년 사이에 폐쇄되었고, 45년 춘계까지 경성, 평양, 부산, 대구만이 경마를 시행하였다.
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조선마사회가 일본인 손에서 한국으로 인수되면서 그해 11월 조선마사회를 한국마사회로 임의 개칭하고 초대 한국마사회장에 나명균씨가 임명되며 드디어 한국경마가 시작되었다.

한국경마의 시작

49년 9월 28일 농림부에서 한국마사회 회명 변경을 인가하면서 현재의 한국마사회가 태어났다. 본격적인 틀을 갖춘 한국마사회는 이전에 시행되던 조선마권세령을 폐지하고 새로운 마권세법을 공포하였으나 6.25동란 발발로 인해 경마를 중단하게 되었다.
동란으로 중단되었던 경마는 54년 5월 5일 뚝섬 서울경마장이 개장되면서 만 3년 11개월만에 재개되었다.
그동안 시행되었던 지방경마(부산, 대구)는 61년 지방경마장을 매각함으로써 종말을 고하면서 한국경마는 뚝섬경마장만이 남게 되었다.
한국마사회는 66년 민간자본(덕마흥업과 시설투자 계약)을 유치하는 등 성장을 위한 발판들을 마련하였다.
68년에는 국지적인 경마에서 탈피해 한국,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말레이지아 등 6개국이 참가하는 제1회 아시아국제 친선경마대회를 개최하였고, 70년에는 아시아경마협회(ARC)에 가입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경마를 시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70년에는 전화중계로 진행되는 청량리 대왕코너 3층에 장외발매소와 다동 장외발매소를 개장하면서 고정적인 한정 장소에 얽매여 있던 경마가 비록 서울내이긴 하지만 수요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 전화중계로 영업을 하던 대왕코너 장외발매소는 1년뒤 TV중계를 시작하였고, 명동장외발매소가 개장했다.
한국경마의 최초 장외발매소였던 대왕코너 장외발매소는 72년, 75년 두차례의 화재가 발생하는 우여곡절을 거치기도 했다. 대왕코너 장외발매소의 화재로 말미암아 이듬해 명동 및 영등포 장외매장을 폐쇄하고 결국 장외계약을 해제하게 되었다. 장외발매소는 78년 광화실업(주)과 장외매장 재계약을 하면서 다시 부활되었다.
경마가 본격적인 상승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은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과천 서울경마장이 건립되면서 부터다. 한국마사회는 83년 올림픽 승마경기장 건설업자로 지정되면서 올림픽이후 승마경기장으로 활용된 경기장을 경마장으로 용도변경할 수 있도록 정부로 부터 허가를 받은 것이다.
뚝섬경마장이 개장된 이후 한국경마는 세차례에 걸쳐 경마가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는데, 4.19의거와 5.16군사태, 대통령 피살에 따른 국상으로 인한 것이다.
84년 무한이었던 일인당 발매상한선이 50만원으로 변경되었고, 이후 30만원(85년), 20만원(86년)으로 상한선이 계속 내려갔고 94년부터는 현재와 같은 발매상한 10만원으로 바뀌었다. 국적있는 경마시행과 경주마 자급을 위한 원당 종마목장이 84년 개설되어 한국경마는 경주마 생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또한 국내에서 경주마 생산의 최적지로 알려진 제주도에 경마장이 88년 개장하면서 조랑말 보호와 국내산마 생산을 위한 본격적인 체계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뚝섬경마의 마지막이 임박한 88년, 그당시 최고의 경주마였던 ‘포경선’이 국내에선 최초로 은퇴식을 가지며 뚝섬시대의 폐막을 알렸다.

한국경마의 발전기

한국경마는 98년 9월 1일부터 과천 서울경마장으로 이전하면서 현대식 시설속에서 발전을 위한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경마는 체계적인 제도들을 갖추며 발전을 지속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해 경마의 레저스포츠화를 위한 첫 야간경마가 시행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로 경마팬들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비경마일에 서울경마장을 무료개방함으로써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고, 구좌투표를 새롭게 시행하였다.
94년에는 경마장 전철역이 개통되면서 보다 많은 경마팬들이 경마장을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경마장 주로내에 있던 골프장을 바꿔 경마공원으로 개장해 가족단위 경마팬을 수용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95년 한국마사회에 소속돼 있던 조교사, 기수, 관리사들이 독립하면서 비영리 사단법인 서울경마장조기협회로 공식 발족했다. 잃어버린 지방경마시대의 부활을 위해 경주경마장 건설을 위한 건설단을 구성 부지확보와 건설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경주경마장은 오랜기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경마장 부지내에 유물출토와 지방단체의 반발로 인해 장기적인 답보상태를 지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주경마장 육성목장이 준공돼 실질적인 국내산마 생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까지 한국경마는 열악한 환경속에도 발전을 지속한 단계로 볼 수 있고,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발전속도가 더욱 가속화 되는 가운데 건전경마를 위한 많은 노력들이 나타난 때라고 볼 수 있다.

한국경마의 현주소

한국경마는 현재 연간 1천만명에 가까운 입장인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매출액도 3조2천억원에 이르는 방대한 대기업으로 성장을 했다.
또한 IMF라는 범국민적 경제대란을 직면해 경마시행체인 한국마사회는 정부의 정부출연·위탁기관 경영혁신 추진계획에 의거해 대대적인 구조조정 및 경영혁신에 들어갔다.
한때 부정의 온상으로 까지 오해되었던 경마장은 자체정화를 통하여 신뢰성과 공정성을 갖춘 선진경마로 거듭나고자 경마관련 제도, 경마관계자 의식개혁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변화된 모습에는 지방경마 시대 부활, 경주마 생산의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 확충, 한국경마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 등이 있다.
우선 94년 경주경마장 건설을 공표하면서 지방경마장의 빠른 부활을 기대해던 한국경마는 경주경마장 부지내의 문화재 발굴이 채 끝나지 않아 시행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지만 99년에 건설승인을 받은 부산·경남권 경마장이 올해 공사에 들어가 2003년까지 공사기간으로 5년후에 개장 계획이다.
또한 지방경마의 첨병역할을 하게될 지방장외발매소가 99년 첫 선을 보였다. 7월에 대전지점이 개장했고, 올해 연말에는 광주지점이 개장을 앞두고 있다.
한국마사회의 국산마 자급률 확대에 대한 노력으로 경주마 생산이 점차 자리를 잡고 있으며, 98년 역사상 첫 국내산마 경매가 열려 2년째를 맞이한 올해는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보다 전문적인 시설에서의 과학적인 경주마 육성을 위해 전북 익산에 제2육성목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속의 한국경마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한국마사회의 노력은 98년 10월 한국혈통서의 국제 공인이라는 성과를 일궈내며, 한국경마가 드디어 세계경마계에서 인정하는 경마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한국경마는 빠른 시대변화 만큼이나 빠른 성장과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경마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많이 남아 있다.
세계 경마국중 가장 낮은 환급률이 가장 시급한 해결문제다.
이 환급률 인상은 경마자체의 제도뿐만 아니라 경마를 바라보는 정부 및 사회의 시각변화도 동반돼야 가능하다.
그리고 경마의 각종 제도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지금까지는 큰 홍보없이 찾아오는 경마팬을 상대로 성장을 해왔지만 앞으로 나타날 경쟁산업을 염두에 두고 보다 적극적인 경영 및 홍보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권순옥 기자】

한국경마 변천사

1898. 5.28 외국어학교 연합운동회 학생나귀 경주 시행
1922. 4.5 사단법인 조선경마구락부 설립인가
1928. 9.20 경성경마회(신설동) 준공 낙성식
1942. 3.1 조선마사회 정관인가
1945. 9.22 조선마사회 인수
1949. 9.28 한국마사회 회명변경 인가
1954. 5.5 뚝섬 서울경마장 개장(3년 11개월만에 경마 재개)
1966. 1.14 민간자본 유치(덕마흥업과 시설투자계약)
1968. 5.25 제1회 아시아국제친선경마대회개최
1970. 8.19 장외발매소 설치 인가
1970. 9.18 ARC 한국가입 만장일치로 가결
1971. 5.17 기수양성소 개소
1979. 2.28 쌍승식 폐지, 연승식 시행
1980. 5.1 전광게시대 운용 개시
1980. 9.11 ARC 서울 개최
1982. 5.12 복승식 선후착제 실시
1984. 11.4 종마목장 개설(경기도 고양군 원당)
1986. 4.4 마권 발매 예매제도 시행
1987. 9.1 경주편성기준 개선(10등급→7등급)
1988. 3.4 전경주 사전 약물검사 실시
1988. 6.25 국산마 특별경주 시행
1988. 12.22 ‘포경선’은퇴식 행사
1989. 9.1 서울 경마장 과천이전 개장
1989. 9.8 첫 야간경마 시행
1991. 8.10 가족석 및 단체석 개장
1992. 1.1 마사회 관장부터 이관(농림수산부→체육청소년부)
1992. 10.1 부정경마 척결 및 공정경마 구현을 위한 결의대회
1993. 5.9 비경마일 서울경마장 무료개방
1993. 5.15 구좌투표제도 시행
1993. 8.14 마주제 전환기념 특별경주 시행
1994. 3.12 마권구매 상한선 하향조정(20만원→10만원)
1994. 4.1 경마장 전철역 개통
1994. 6.1 경마공원 개장
1994. 6.28 경주 경마장 건설 문체부 시행허가
1995. 9.5 제주경마장 육성목장 준공식
1997. 서울경마장 신축 관람대 증축공사 착공
1998. 9 부산·경남권 경마장 건설 확정
1998.10 한국혈통서 국제공인
1999. 7 대전 장외지점 오픈

작 성 자 : 권순옥 violet@krj.co.kr

 
출 판 일 : 1999.10.02 ⓒ K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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