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후 암울했던 한국경마

1921년 경마가 시작된 이래 태평양전쟁 말기에도, 광복 후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중단되지 않고 계속해온 경마가 공백기를 맞이한 시절이 있었다. 바로 6.25 전쟁으로 1950년 7월부터 1954년 4월까지 약 4년 간의 기간이다. 마사회 임직원과 조교사, 기수들 가운데 일부는 군에 입대하기도 하고 일부는 피난의 기회를 놓친 채, 6.25를 보내고 9.28 서울수복을 맞아 경마장에 다시 모였다.
하지만 신설동 경마장은 폭격으로 폐허가 됐고, 북한군의 탱크나 각종 장비의 은폐물로 이용된 상태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의 성립으로 모든 경마인들은 경마 재개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신설동 경마장은 미군의 육군본부 비행장으로 계속 징발되어 재기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만다. 단시일내에 군용비행장 징발이 해제될 가망이 없음을 느낀 제5대 김우경 마사회장은 지금의 동대문 운동장 뒷편에 임시사무소를 설치하고, 당시 채소밭이었던 뚝섬 부근에 새로운 경마장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불도저 앞에 드러눕는 경작자들
기존의 신설동 경마장은 건설당시 10년 기한으로 토지를 임차한 것이어서, 이미 30년대 말 조선경마구락부가 새로운 경마장 후보지로 뚝섬 부근의 땅 14만여평을 이미 매입해 둔 상태였다. 토지의 상태는 6.25 이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상당수의 농민들이 채소를 재배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어서, 경마장 건설은 극심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뚝섬경마장의 주로공사가 시작된 것은 1953년 7월.
주로 정지작업에 나선 불도저 앞에 농민들이 드러누워 결사반대하는 소동속에서 가까스로 주로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주로는 완비됐지만, 전쟁후의 예산부족으로 경주마를 비롯한 관람대, 시행시설 등은 갖추지 못해, 경마시행은 차일피일 늦어졌고 결국 뚝섬경마장이 개장된 것은 1954년 5월 8일 무렵이다.

불황의 늪
50년대 우리나라 경마는 경마역사상 가장 불행한 시절이었고, 사업규모 면에서도 극심한 불황기로 기록된다. 광복 후(45~50년)의 하루평균 입장인원 3000~4000 명에 비해 비교조차 안되는 하루 350~700 명의 입장인원으로 54년부터 60년까지 불황의 터널은 길고 깊었다. 이같이 부진했던 이유는 뚝섬경마장의 교통이 동대문-뚝섬 간 기동차 하나로 유지됐고, 성동교만 건너면 허허벌판 채소밭의 연속이었을 만큼 고립된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보다는 전후의 어려웠던 국민경제도 그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국민 모두가 생활고에 매달려서 여가생활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경마 역시 대중오락으로 뿌리내리기까지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허락지 않았다.

뚝섬초기 조랑말 시대
뚝섬경마장이 개장된 1954년부터 1965년 간의 경주마를 살펴보면, 조랑말로 편성된 경주가 대부분이었다. 6.25발발당시 신설동 경마장에는 약 300두의 경주마가 있었으나, 대부분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 그들의 군수물자 수송에 이용되다가 진주.하동 방면 전투에서 대부분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조랑말을 투입하여 시행된 뚝섬 초기 경마는 매출액 부문에서 사업성이 떨어졌고, 1957년 해방 후 최초의 외국산 개량마 100 두(일본산)가 수입되어 한때 경주에 활기를 불어넣었는데, 이 해의 입장인원과 매출이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을 보면, 경주마의 질이 경마의 흥행성을 좌우하는 비중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알수있다.

경주마 도입.운반의 역사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그 해에, 우리나라 경마계는 마필공수가 시작된 첫 해로 평가된다. 그 당시엔 사람들도 비행기 이용이 생소했기에, 경주마를 비행기로 실어 나른다는 것은 사회에서 신선한 화제거리임에 충분했다. 광복 전이나 광복 후 60년대까지는 주로 일본 큐슈 지방에서 화물선으로 현해탄을 건너 부산항에 운반됐다. 해상수송의 경우 일본은 길어야 일주일 정도지만, 호주에서 수입할때는 최단 15일에서 한달이 소요됐다. 마필의 장거리.장시간 수송은 체중격감, 수송열, 신경과민 등 마체에 극심한 타격을 준다고 하니, 우리나라에 도착하면 말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고 수송 경험자들은 회고한다. 이런 수송병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의 경마계는 막대한 수송비를 감수하고서라도 되도록 항공편을 이용하게 됐고, 우리나라도 1969년 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해에는 아시아 국제 친선경마가 개최될 예정이어서 조기에 공수 도입이 시작됐다고 한다. 공수 첫해인 69년도에 4차에 걸쳐 총 121 두가 도입됐는데, 마지막 4차 공수에서는 수송 중 2두가 발작을 일으켜 부득이 기내에서 사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마필 공수사상 최초의 사고로 기록된다.


작 성 자 : 손성호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