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커져가는 불신 속에 조마삭 훈련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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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최고

말의 고집을 꺾어 본 적 없는 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30여 년간 승마를 해오면서 한 번도 말의 고집을 이겨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 잠시 동안 내가 추구해온 것을 구현했을 때 이에 만족해 착각 속에서 희열을 느끼며, 마치 영웅담을 설파하듯이 동료나 선후배에게 잘난 척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과장된 몸짓과 입놀림이 진실을 감춰 버린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결코 말의 고집을 이겨내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0.1%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오늘도 똑같은 대립을 나름 기술적이고 심도 있게 이어나가고 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격렬한 대립은 계속 이어졌으며, 우리 서로는 끝까지 양보의 미덕을 배우지 못한 고집불통처럼 소통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포기를 해야 하나? 2보 전진하기 위해서 1보 후퇴를 해야 하는 건가? 만약 후퇴를 하면 내가 싸움에서 지는 것인가? 이기는 것인가? 아님 양보를 하는 것인가? 이때 당시에는 모든 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불신
Classic Girl(이하 CG) 또한 당시 확신이 서지 않은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처럼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양보할까? 양보해야 되나? 고민하는 모습인 듯 했다. 훈련을 하는 중에 될 듯 말 듯 한 상황들이 너무나 많았다. 잠시나마 서로 양보해 훈련이 잘 되다가도, 불안하고 만족 할 줄 모르는 사나운 마음이 다시 나타나면 CG는 불편해 하는 모습이었다. 둘은 다시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소년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곤 했다. 당시 흔들리는 내 마음은 CG에게 고스란히 불신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커져가는 불신과 상처
CG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서 불거진 작은 불씨는 점차 커져갔고, 이를 조기에 진압하지 못하고 되려 부채질 하는 꼴이 돼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점차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까지 도달하게 되었으며 최후에는 양보를 모르는 불통으로 인한 처절한 싸움으로 인해 재갈을 물고 있는 CG의 입에서 혈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내 시선과 마음은 추운 겨울에 부는 매서운 찬바람만큼 차갑기만 했다. 이때 내 감정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함께 추호의 소통도 하지 않으리라는 미움이 너무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말의 양보란 있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정에 달했고, 그렇게 최악의 상황이 여러 날 더 이어졌다. 이로 인한 서로간의 상처는 커져 갈 수 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처절한 싸움의 결과, 입에 혈흔이 보이자 CG는 밥을 먹는 것도 불편해 했다. 특히 대록 재갈을 입에 물리려고 하면 심한 반항을 했고, 재갈을 물리고 난 후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끌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기승을 하고 운동을 시작하면 ‘언제 내가 아프대? 해 볼 테면 한번 해 보자고’라며 자존심이 강한 고집불통의 모습을 보였다. 싸움을 다시 시작 하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불신은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난 심한 좌절감으로 인해서 포기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다. CG도 이때쯤 재갈을 물고 있던 입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CG와의 끝은 여기까지인가? 난 또 다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휴승하고 조마삭(Lungeing)으로 운동을 시키겠다는 훈련 방법을 수정하기까지는 몇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내게는 기나긴 고민거리를 풀지 못해 한곳에 안정돼있지 못하고 길 떠나는 나그네의 불안한 눈빛처럼 시간에 쫓기고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를 바라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놓아야 했다.

너는 마녀, 나는 악마
이 세상 최고의 고집불통 마녀와도 같은 CG였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무슨 맘을 먹고 있는 것인가? 포기할 줄 모르는 악마? 정말이지 내 마음 속에도 이해 못 할 녀석이 들어있다.

손이시려 꽁! 발이시려 꽁!

추운 날씨 속에 조마삭 훈련을 시작하다
영하 16도 강추위가 연일 이어졌다. 훈련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든 날이 아니었다. 이때쯤 해서 CG를 기승훈련이 아닌 조마삭(調馬索) 훈련으로 시작한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기승 훈련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얼룩진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조마삭 훈련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었다. 조마삭 훈련 또한 안전상의 이유와 보다 정확한 훈련의 효과를 위해 조금은 억압돼 있지만 내가 기승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CG에게 자유를 주면서 훈련을 시킬 수 있었다.

CG에게 고그와 Side-rein을 동시에 착용시켜서 조마삭 훈련을 시켰다. 이 훈련을 통해서 내가 CG에게 얻고 싶은 것은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목의 모양과 엉덩이와 허리부분의 부드럽고 경쾌한 율동과 양쪽 어깨의 자유로움이 가득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완벽한 방한 대책 후 조마삭 훈련을 하는 이유
조마삭을 돌리는 나는 매서운 추위에 견디기 위해서 완벽하게 방한을 하고 CG에게도 엉덩이 윗부분에 담요를 덮어서 훈련을 시켰다. 조마삭을 돌리는 내가 방한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으면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게 되고, 추위 때문에 훈련의 집중도가 떨어지며 대충대충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훈련시간도 충분치 못하게 된다. 겨울에 조마삭 훈련을 할 때는 철저하게 방한에 신경을 써서 추운 날씨로 인해서 자칫 소홀하고 게을러질지 모르는 상황을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

통제권 안에 머물도록
조마삭 훈련을 하기 위해서 마장으로 이동할 때는 고그와 Side-rein을 재갈에 바로 걸지 않고 조마삭 장구에 착용만 시켜서 마장으로 끌고 갔다. CG를 끌고 갈 때에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가지 못하도록 했다. CG가 앞서가려고 하면 조마삭 채찍으로 CG의 앞무릎 쪽을 막거나 톡톡 쳐 주어서 나의 걸음 속도에 맞춰 걷게 했다. 이는 언제나 나의 통제권 안에 머물러 있도록 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훈련 전부터 교감을 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기도 했다. CG가 앞서가려고 하는 동작을 하면 제자리에 정지를 하고 채찍으로 앞무릎을 톡톡 쳐 주어서 후퇴를 서너 발 시킨 후에 잠시 정지했다가 다시 출발을 시키곤 했는데 이때 CG가 먼저 움직이지 않고 내가 먼저 움직이면 다음에 따라오도록 했다. CG에게 이를 반복 훈련을 시켜서 나보다 앞서가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시켰다. 단순한 훈련이지만 CG가 영리한 덕분에 이 훈련은 빠르고 쉽게 받아들였다. 다른 훈련들도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다.

마장에 도착하면 고그와 Side-rein을 착용시키고, CG가 좋아하는 왼쪽 방향으로 먼저 운동을 시켰다. 나 역시도 왼쪽 방향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고그와 Side-rein의 길이는 적당하게 맞추어서 착용시킨다. 적당한 길이는 제자리에 서서 고그를 재갈에 걸어 당겨서 고정 고리에 걸고 난후에 한발 뒤로 물러서서 말의 머리 정수리와 콧등이 지면으로 이어진 가상의 수직선과 일치되거나 약간 앞으로 나와 있는 상태가 적당하다.
이렇게 시작된 운동은 한 방향으로 5분가량 지속되며 속도의 변화를 주기도 하고 원의 크기를 줄이거나 늘리기도 하며 운동을 시켰다. 반대로 같은 방법으로 5분가량 운동을 시킨 후에 다시 말을 세워놓고 고그를 좀 더 짧게 하여 콧등이 수직선상보다 말의 가슴 쪽으로 더 다가가도록 조절해서 운동을 시켰다. 이때 Side-rein은 고그와는 반대로 조금 더 길게 해 주어서 CG가 목을 아래위로 자연스럽게 사용 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조마삭 훈련을 시켰으며, 때때로 좀 더 강한 요구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고그의 길이를 더 줄여서 훈련을 시켰다. 시간은 60분 동안 5분마다 방향을 바꿔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게 훈련을 시켰다.

겨우내 지속한 조마삭 훈련
조마삭 훈련을 시키는 동안에는 잡고 있는 조마삭 끈이 CG의 입과 가볍고 부드럽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만약 당겨지거나 연결 상태가 좋지 않다면 CG가 목을 부드럽게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이렇게 훈련을 시키자 CG의 목은 점차 좋은 모습을 유지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와 엉덩이 부분의 율동도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조마삭 운동은 추운 날씨와 관계없이 추운 겨울 내내 지속해 훈련을 시켰다. 강도 높은 기승 훈련을 해오다 비록 통제됐지만 그 안에 자유로운 움직임이 허용되는 조마삭 훈련의 편안함으로 인해 CG에게 쌓인 스트레스도 점차로 사라지며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단계 성장을 위해 한숨 돌리는 시간
완전한 내 선택에 의한 훈련이 아니었지만 유난히도 추운 겨울 조마삭 훈련은 나와 CG에게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 한숨 돌리고 기회를 마련해줬다. 마치 태조 이성계가 신덕왕후를 만난 것과 견줄 만큼 잠시 쉬었다가는 좋은 시간이 됐다. 너무 바쁘게 가지 말아야 하는데.....,

▲이 세상 최고의 고집불통 마녀와도 같은 CG였다. 그리고 포기할 줄 모르는 내 마음 속에도 악마(?)같은 녀석이 들어있었다.
▲조마삭을 돌리는 내가 방한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으면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게 되고, 추위 때문에 훈련의 집중도가 떨어져 대충대충 훈련을 하게 된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작 성 자 : 황인성 gomtiger@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