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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의 주인은 팬들...‘경마팬이 없으면 마주도 없다.’
-마주에 대한 편견 안타까워...인식 개선에 최선 다할 터
-시대의 명마 ‘대견’의 은퇴를 맞는 심재식 마주의 감회는 남다르다. 97년 9월 그저 명마의 마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견’을 인수한 심재식 마주. 지난 4년간 ‘대견’으로 인해 수많은 기쁨을 맛본 그는 ‘대견’을 은퇴시키면서 지난 4년간 팬들이 보내준 성원에 감사하며, 팬들의 뜻에 따라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도병으로 6·25에 참전하고, 육사 12기 출신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했던 그는 이건영 전 한국마사회장(전 육군대학 총장)과의 인연으로 경마라는 것을 알게 됐고, 개인마주제 전환과 함께 마주가 돼 경마장과 인연을 맺는다. 처음에는 질풍같이 경주로를 달리는 말들의 모습에 매료됐다.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던 셈. 하지만 지금은 “노년에 이만한 취미나 레크레이션은 없다.”며 경마가 주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자식들이 모두 부모품을 떠날 나이에 마주가 돼 말에게 사랑을 쏟으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고, 말을 돌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니 건강에도 좋고, 탁 트인 공간에서 말달리는 모습도 보고, 사람들도 구경하고, 무엇보다 경마가 추리와 분석을 요하다 보니 머리를 많이 쓰게 되고...이 모든 것이 경마가 그에게 주는 재미다. 젊은 나이에 경마에 빠져드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취감을 맛보고 자기 절제력을 갖춘 노년에 즐기는 레저로는 경마만한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경마일에 하는 베팅액은 10만원 안팎. 경주를 분석하고 말들의 상태를 체크한 후 한 경주당 몇 천원 정도의 마권을 사고는 결과를 보고 흥분하고 아쉬워한다. 그와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호화 관광을 즐기고 고액의 내기 골프를 즐기는 그 시간에 말이다.
-“팬들이 있기에 마주인 내가 있을 수 있다.”
-열악한 관람시설...신관람대 개장되면 나아지길 기대한다.
‘대견’ 이외에도 ‘흥부’, ‘미스터헬로’ 등으로 한 때 우승마주로 명성을 날렸던 심재식 마주. 그는 혈통 좋은 말을 싸게 사는 마주로도 유명하다. 경매 때만해도 다른 마주, 조교사들이 지쳐 있을 오후 늦게 까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숨어있는 좋은 말을 골라내기 일쑤. 지난 4월에 있었던 1차 경매에서도 1천만원이라는 헐값(?)에 랜드러쉬 자마 ‘퍼팩트윈’(43조)을 구매했다. 디디미 자마인 ‘번개같이’(11조, 4전 1승, 2위 2회)의 경우는 ‘흥부’를 내주고 1천 5백만원을 얹어주고 사왔다. 과거 성적이 좋을 때는 상금으로 받은 돈이 지금 하고 있는 사회사업에 요긴하게 사용됐는데, 요새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 사회사업을 위해서라도 보유마들이 좋은 성적을 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사회사업을 하는 관계로 서울마주협회 복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그 시절 심장병 어린이 45명(1인당 2백만원 정도 제공)에게 수술기회를 제공하는 등 주위의 불우이웃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마주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길은 사회기여와 환원 노력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반 팬들은 마주실에서 모종의 음모나 담합이 펼쳐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마주들도 마주이기 전에 한 사람의 경마팬이고, 자신들의 말 이외에는 다른 말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고 한다. 웃는 얼굴로 퇴장하는 팬들을 보고 싶다는 그가 마주에 대한 편견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것은 열악한 관람시설.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경주를 관람하는 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내년에 신관람대가 개장하면 다소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견’ 그냥 보내지 않겠다.”〉
“‘대견’은 당근을 무척 좋아했다.” 새벽에 그가 당근을 들고 마방에 들어갈 때마다 ‘대견’은 킁킁거리며 그를 반겼다. 심재식 마주의 눈은 인터뷰 동안 ‘대견’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빛났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 내내 팬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팬들의 성원과 사랑에 고맙고 평생 잊지 않고 보답하겠다는 것이다. 은퇴도 팬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정이었고, 당초 ‘대견’을 육사군마대 등에 기증할 계획이었으나 팬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기증하겠다고 생각을 바꾼 것도 팬들의 의견을 소중히 여긴 결과다.
-한국경마, 문화가 있는가?
‘대견’을 은퇴시키면서 그는 서운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견’의 성적이나 위치로 볼 때, 그저 그렇게 잊혀져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은 이미 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경마팬들과 경마인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 하지만 이번에 은퇴식을 하게 된 것도 그가 몇 번이나 닥달을 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외국에는 사진전시, 동상제작을 통해 오랜 세월 명마를 기리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동안 ‘포경선’, ‘차돌’, ‘가속도’ 등 숱한 명마가 있었지만, 동상은 고사하고 변변한 사진도 전시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앞으로 신관람대가 개장되는 등 공간이 늘어나고 관심이 고조되면 새로운 문화로 과거의 명마, 명기수를 추억하는 장소가 마련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대견’이 그 시금석이 됐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램이다.
인터뷰 내내 팬들의 사랑에 감사해 했던 그는 덧붙여 호주에서 ‘대견’을 발견하고 구입한 최혜식 조교사와 8년 동안 도맡아서 훈련을 시킨 홍종배 조교보를 비롯한 39조 마방 식구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권현 기자 knhn@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