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에 대한 애착을 말에 대한 애정으로 승화 시켰다’
‘인생역전’ … 경주마 관리에 온 정성
말과 생활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소망
78년의 한국경마가 여타 스포츠를 제치고 팬확보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경마가 가지는 고유속성에 기인한 점이 우선시 되겠지만, 그 이면에는 모진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그늘진 곳에서 경마를 지켜온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40조 유병복 조교보 또한 한국경마의 초석이 된 사람들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 스스로 거창하게 한국경마의 발전을 위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진 않지만,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가 발전하기 위한 노력 하나하나가 바로 디딤돌이 된 것이다.
올해로 그의 나이 43세. 집에서는 어엿한 가장으로, 마방에서는 크고작은 일을 챙기는 조교보로 생활하고 있다.
말과 생활한 지 벌써 강산이 두 번 변했다. 더불어 자신의 인생 역전도 짧지 않았다.
그는 82년 부푼 꿈을 안고 현재 1조 조교사로 재임중인 박종곤 조교사와 동기기수로 경주로에 데뷔했다.
기수의 삶은 그에게 무한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신인 티를 벗지 못했던 95년 호주페케남컵 경마대회에서 ‘백화’란 경주마에 우연찮게 기승하게 됐는데, 우승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한껏 높였다. 그리고 무궁화배에서도 지금 근성의 승부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배휴준 기수의 사정으로 대신 기승했던 ‘밀림호’로,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꽃다운 20대를 뚝섬경마장에서 바쁘게 누비며 다녔다.
하지만 찬란했던 시절은 86년을 마감하면서 함께 끝나고 말았다.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틀을 잡아가던 기수생활을 박차고 그해 12월말 무작정 사회로 뛰쳐나온 것이다.
당시 마사회 직원들의 만류가 많았지만 초창기 마음은 확고했다. 기수가 되기전 선반기능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던 것도 한 몫을 작용했다고 한다.
경마장에서 4년을 지내면서 저축한 돈과 퇴직금을 모아 제법 큼직한 호프집을 차렸다. 첫 날 매상이 제법 올랐기 때문에 나름대로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사회 초년병의 꿈은 깨지고 말았다. 첫 날 이후 손님 그림자도 구경하기 힘들었고, 결국은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당시 체인점 형식의 점포를 차린 것인데, 남의 말만 믿고 선뜻 계약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기수복을 벗어버린 뒤 첫 도전에서 풀이 꺾여버린 그는 의욕을 잃고 낚시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였다. 당시 산부인과에 입원중이던 부인과 아기가 돈이 없어 퇴원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시작점을 찾게 되었다.
그 돌파구가 되었던 것이 자신이 뛰쳐나온 경마장으로의 회귀.
비록 신분이 관리사로 변경되었지만 가슴 한켠에 남아있던 기수에 대한 애착을 되살릴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
관리사 업무 초기, 육체적인 어려움은 별반 없었지만, 정신적인 어려움이 그를 괴롭혔다. 실질적으로 그랬는지 알 순 없지만 사회에서 실패하고 돌아왔다고 하지나 않을까 자격지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도 평일에는 일을 하면서 적응을 할 수 있었지만 경주일이 되면 출전하는 기수들을 보면서 ‘다시 기수를 한다면’하는 생각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아야 했다.
하지만 서서히 자신의 현위치를 인지하게 되고, 한동안 본분을 잃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관리사로서 업무에 충실하게 되었다.
2년이 흐르는 동안 본분에 충실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결실이 맺어 조교보 시험에 합격, 조교보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앞으로 달렸고, 현재 조교사 면허를 취득해 놓은 상태다.
한 마방의 아버지가 조교사라면 조교보는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하고 바쁜 생활이 연속되는 곳이 바로 경마장 생활이다.
주말마다 마방식구들이 흘린 땀의 대가를 시험받는(?) 경마장 생활이 한편으론 긴장의 연속이고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만, 노력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쁨이 존재하기에 매력을 느낀다..
유조교보는 자신이 훈련한 마필들이 경주에 우승할 때가 가장 기뻤다고 한다. 특히 40조 대표마인 ‘신세대’를 받아 관리를 하면서 문화부장관배와 그랑프리 우승을 할 수 있는데, 조금이나마 자신이 도움이 되었다는데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
그는 경마장 삶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한때 경마장을 떠나기는 했지만, 언제부턴가 말이 없는 자신의 인생을 그리지 못할 정도로 완전한 경마인이 된 것이다.
욕심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는 말과 생활하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기수로서의 삶을 접은 때도 있지만 유병복 조교보는 그것을 불행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기수의 애착을 말에게 쏟아 붓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것이다. 방법이야 다르겠지만 여전히 그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말과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자신한다.
한국경마의 내일이 밝은 것은 드러나지 않는 곳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경마지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둠속에서 새벽이 영글어 갈 무렵이면 수백명의 조교사, 기수, 관리사들이 한국경마의 꿈과 자신의 꿈을 경주마에 싣고 경주로를 달리고 있다.
【권순옥 기자margo@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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