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아가면서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직업은 없겠지만, 기수라는 직업도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직업이다. 주위 사람들은 기수들보고 “달리는 말을 타니 항상 신이 나서 좋겠다!”는 얘기와 함께 부러워하며 기수란 직업은 참 좋겠다고 하는데, 정작 기수들은 스트레스에 죽겠다고 야단이다. 기수들에게는 말에 기승 하는 것이 일반인 마냥 취미로 타는 것이 아니고, 경마일에 많은 경마팬들 앞에서 치열한 승부와 함께 그 결과에 따라 우승과 패배가 항상 교차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것 같다. 그래서 기수들은 경마일만 되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가는데, 어떤 기수들은 경주전날인 금요일부터 무엇인지 모를 압박감이 가슴을 진 누르며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한다.

세상일이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 일에 대하여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은 후 한참 후에야 결과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기수에게 있어서 말을 타는 것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일의 과정에 대한 결과물이 빨리 나오고, 그 결과에 대하여 기수가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기수가 받는 압박감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경마가 매주마다 시행되는 만큼, 승패에 따른 결과물에 대하여 매주, 매경주마다 심판을 받는 것이 바로 기수라는 직업이다. 그러기에 기수들은 한 주의 경마가 종료되면, 한번도 기승하지 않았던 기수나 한번이라도 기승했던 기수나 모두다 경마가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무언가 모르게 해방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한 주의 경마가 끝나면 술을 좋아하는 기수는 한잔의 술을 마시며 피로를 풀기도 한다.(기수뿐만 아니라 경마팬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말 한 필을 경주에 출전시키기 위해 한 보름정도 사양, 조교 등을 열심히 준비하는데, 항상 이긴다는 마음으로 경주에 내보내며, 마주, 조교사, 관리사 등 출전하는 말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우승유력마에 기승해서 혹시 자신의 실수나 또는 타인의 방해로 인하여 경주에 지고 들어오면, 그에 따른 심적 부담은 기수가 모두 져야만 하기에, 그저 한숨만 푹푹 쉬며 괴로워할 뿐이다.

기수대기실에는 매 경주가 끝날 때마다 일등을 하거나 또는 자신이 기승한 말이 예상보다 좀더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 기뻐하는 기수도 있지만, 어이없이 패배했을 때에는 그것에 대하여 스스로 분에 못 이겨 한숨만 푹푹 쉬고 앉아 있는 기수들도 있다. 경주에서 지고 들어왔을 때 위로하여 주는 사람은 없고, 조교사로부터 야단 맞을 일만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길 수 있는 경주에서 졌을 경우는 아쉬웠던 경주 장면만이 머리 속에 떠오르며 자책만 쏟아질 뿐이다. 경주에 패한 원인을 잘 알기에 더 답답해하며, 그 패인을 그려보며 “미리 서둘러 나왔어야 좋았는데..” 또는 “조금만 더 참았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하며 버스 지나간 뒤 아쉬움만 내뱉는다.

이번 주 일요일 2경주에서, 필자는 ‘황금나팔’에 기승해서 2등은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발주기로 다가갔다. 발주기 뒤에서 윤승을 하는데, 마침 옆에는 김혜성 기수가 있었다. 김혜성 기수가 이번 경주에 어떤 말이 잘 뛰냐고 묻기에 ‘빅토리사인’이 휴양은 했지만 제일 잘 뛸 것 같고, 2등은 주어 먹기일 것 같다고 했다. 나의 말도 2등은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하니, 김혜성 기수 왈 “그러면 홍 기수님 말만 ？아 가면 등수에는 들어 올 수 있겠네!”하며 농담을 한다. 얘기를 듣고 김 기수가 기승한 말을 생각해 보니, 성적이 별로인 말이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경주에 임했는데, 막상 라스트에서 결승선을 향해 스퍼트하던 도중에 김 기수가 기승한 ‘은공주’와 2등 싸움을 벌였다. ‘은공주’가 2등을 차지했고 필자는 3등을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1등한 말은 능력이 있다고 보았기에 그렇다손 치더라도 ‘은공주’한테 패한 것이 아쉬워서 “내가 경주 중 어떤 부분에서 불리하게 기승해서 패했나?”하고 레이스에 대하여 이리저리 분석해봤지만, 패한 것에 대한 아쉬움만 진하게 남을 뿐이다.(기수들은 윤승 중에도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농담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오해는 하지 마시길!)

기수대기실 쇼파에 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기수들이 “어어.. 김형수 죽이네!”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눈을 떠보니, 김형수 기수가 기승한 ‘맘에들어’가 4코너를 돌면서 밖으로 크게 사행하는 장면이 모니터에 들어왔다. 최고 인기마인데 선행에 나서서 크게 사행을 하니 당연히 성적은 엉망이고, 아무튼 기수들은 모니터를 보면서 “김형수.. 죽네! 죽네!”한다. (경마팬들은 말이 이렇게 사행하는 것을 보고 기수가 고의로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는데, 말이란 동물은 한번 사행을 하면 기수가 어떻게 해보려고 교정해도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말을 타는 기수입장에서는, 최고의 인기마를 타고서 선행을 가다 갑자기 사행을 하게 되었으니 기수 자신도 어이없고 미치겠는데, 말이 사행을 하였다는 변명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저 이럴 때 항상 기수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말이란 동물은 믿을 수가 없어!” 아무튼 김형수 기수.. 기수대기실에 들어오면서 머리에 팡팡 쥐가 난다.

AJC트로피 특별경주에서 ‘로빙’과 ‘샤이닝타임’의 선행싸움이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로빙’은 쉽게 선행 나섰으나 ‘샤이닝타임’은 그만 늦출발을 한 나머지 맨 뒤에 있는 것이다. 순간 필자는 김창옥 기수 얼굴이 떠올랐다. 기수라면 선행마에 타고서 저렇게 늦출발를 하게 되면, 그 누구에게도 변명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자기 자신이 너무나 비참해서 쥐구멍에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동기생이어서 그런지 암담해할 김창옥 기수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로빙’을 선두로 4코너를 돌면서 말들이 모두 뭉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졌다.  뒤에서 추입을 하는 말들이 뚫고 나올 공간이 없어서, 추입마들이 라스트에서 이리저리 헤메고 있다. 후속권 마필들이 아쉽게도 ‘로빙’과 비슷하게 들어오며 2등, 3등을 한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기수들이 대기실에 들어와서 한마디씩 한다. 김혜성 기수 왈, “너무나 아쉬워! 아쉬워! 이길 수 있었는데..” 옆에 있던 방춘식 기수는 깊은 장탄식을 내뱉으며, 완전히 밖으로 빼서 추입하자니 너무 도는 것 같았고, 그래서 좁은 공간을 뚫고 나오려다 보니 추입이 늦어졌다며 아쉬워한다.

늦출발한 김창옥 기수나 2등, 3등을 차지한 기수들 모두가 아쉬움 속에 괴로움을 토하고 있다. “이거..정말! 제대로 레이스가 풀리지 않네!”하면서...기수들은 하루에도 말을 여러 번 기승 하다 보니 경주가 잘 풀리면 기분이 좋았다가 레이스가 엉망이 되어 잘 풀리지 않으면 바로 지옥으로 곤두박질 친다.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여러 번 오고가니 쌓이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기수에게 쌓이고 쌓이는 스트레스도 경주에서 우승을 하게되면 단방에 싹없어진다. “기수들이여! 우승을 많이 하여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기수들이 되자꾸나!”



작 성 자 : 홍대유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