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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1화 "중독" (15) |
"어제 술 많이 마셨나보구먼?"
김달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아이요.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다 아잉교?"
조용철이 고개를 갸우뚱해보이자 김달오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근디 갑자기 와 이리 된 겨?"
"아무 일도 아닙니다. 좀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죠."
홍성만이 여전히 창백한 표정으로 힘없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요즘 책 쓴다고 하더니 밤샘했던 모양이구먼?"
홍성만은 자신이 대학 강의를 중단한 것을 아는 몇몇 사람들에게 실업자로 인식되는 게 싫어 책을 내려고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말해왔었는데, 굳이 무엇에 관한 글을 쓴다는 얘기하지도 않았고 또 무엇에 관한 글을 쓰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홍성만은 자연스레 저술을 위해 대학 강의를 중단하고 있는 사람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김달오도 홍성만이 책을 내기 위한 글을 쓰느라 밤샘작업을 한 것으로 짐작하고 진심이 담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가보네요."
홍성만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긍게 몸생각허믄서 뭔 일을 해도 혀는 겨. 무리혀서 쓰러져봐. 본인만 손해제. 가뜩이나 홍교수 얼굴이 전에보다 훨씬 안 좋아 보이든디."
"예."
하며 홍성만이 다시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커피한잔 마셔봐."
매점의 카운터에서 두 팔을 괴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최석철이 재빨리 커피를 타 와서 홍성만에게 내민다. 홍성만이 커피 잔을 받아 들려는데
"커피도 몸에 해로운 겨."
하고 김달오가 커피 잔을 빼앗는다. 그런 김달오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조용철이 발끈한다.
"도대체 행님한테는 해롭지 않은 게 뭐 있능교? 모다 해롭고 모다 중독이고! 행님하고 있으먼 골이 빠게질라카네요."
"몸에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지."
김달오가 퉁명스레 대답을 하자 조용철이 다시 발끈 하려는데
"저 잠시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하고 홍성만이 자세를 추스르며 몸을 돌린다.
"2경주 안 헐껴?"
이장수가 눈을 껌벅이며 묻는다.
"예. 어차피 3경주까지는 그냥 관전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려도 한번 때려봐야제. 예상지들 마다 모다 터진다고 됐등만."
이장수가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홍성만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러니까 더욱 쉬는 경주로 생각해야죠."
"어차피 돈 깨질 거 차라리 분위기 붕 떠있는 경주에서 한번 승부를 봐야지 않겄어?"
이장수가 여전히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이는데 김달오가 다시 나선다.
"홍교수말 들어. 자신 없는 경주에 뭐 하러 돈질을 혀? 질 걸 뻔히 알믄서 돈질 허는 거이 뭔 놈의 승부여? 돈질이 아니라 돈지랄이제? 매 경주마다 승부허는 거이 어디 승부여?
"어따 고운 말 좀 쓰시요. 돈지랄이 뭐요?"
이장수가 소리를 높이며 미간을 찌푸린다. 홍성만은 다시 현기증을 느낀다.
"나갔다 오겠습니다."
홍성만은 티격태격하고 있는 김달오들을 뒤로하고 2층 출입구 쪽으로 향한다. 예상지판매대 위의 예상지들을 정돈하고 있던 이승태가 홍성만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가시는 거예요?"
"아니 잠깐 바람 좀 쐬려고."
"2경주 안 하시구요?"
"응."
"3경주 땐 들어오실 거죠?"
"나간 김에 점심 먹고 들어오지 뭐."
"3경주 때 홍교수님 따라하려고 했는데..."
"예상지나 열심히 팔지 베팅은 뭐 하러 해?"
홍성만이 어색한 미소로 툭 내뱉자 이승태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홍성만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은 경마를 하러 오면서 남보고는 하지말라니. 더욱이 이승태는 경마예상지라도 판매를 하고 있지만 자신은 하는 일도 변변한 수입도 없는 실업자 신세가 아닌가? 누가 누굴 생각해주는 척 하는 건가? 홍성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내려와 건물 입구를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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