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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1화 "중독" (18) |
"미친놈들 커피 안 팔려 안달들이 났구만! 낸중에는 경마도 좋은 것이여 하고 신문에 까발릴 놈들이구만?"
하며 김달오가 신문을 툭툭 접어 최석철에게 내민다.
"커피가 몸에 해롭다고 난리들 하지만 결장암이나 직장암 치료제 개발실험에서 암 요소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황산화효소의 활동이 40%나 증가했다는 실험이 나왔고 이 효소는 세포가 DNA를 손상시킬 수 있는 분자를 생성하는 것을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고 되어있지 않소? 그러니까 모든 건 나름대로의 입장에 따라 해가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요. 담배고 커피고 경마고..."
김달오가 최석철을 힐끗 바라다본다.
"모다 중독이 되는 거여 그거이."
"중독이 안 되면 될 거 아니요? 그저 조금씩 자기 건강에 따라 능력에 따라 피우고 마시고 즐기면 되는 겁니다. 안 그래요?"
"그걸 통제 할 수가 ？좇육？그러제. 통제할 수만 있으먼 뭔 걱정이겄어?" 통제 못허니께 폐암도 걸리고 위염도 걸리고 패가망신도 허고 그러는 거제."
"다 팔자소관이요. 아무리 중독이다 하고 말려도 저 좋아서 하는 거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요. 형님은 경마장엘 왜 오쇼? 미련 때문에요?"
김달오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중독이니께."
하며 신음 같은 한숨을 토해낸다. 최석철이 씽긋 미소를 짓더니
"난중에 우리덜 모다 중독자들만 모아놓은 수용소로 함께 갑시다. 가서 옛날 가판대에서 팔던 고무줄 달려서 손잡이로 꼭꼭 눌러주면 앞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던 고무인형 말들로 우리가 만든 트랙에서 경마헙시다. 우리덜끼리 베팅도 허고 환급도 허고 그럽시다."
하며 김달오의 손을 꾹 잡는다. 김달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힐끗 최석철을 바라본다. 최석철은 순간 김달오의 눈빛이 촉촉이 젖어있다는 것을 느낀다.
웨딩 홀 한곳의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홍성만의 의식 속으로 마권판매 마감 30초전의 음악이 들려온다. 마권구매창구 앞에 늘어선 사람들이 혹시나 자신이 선택한 마권을 구매하지 못하게 될까봐 더욱 조바심을 내는 모습들이 보인다. 모니터 화면에는 발주대 앞에서 경주마들이 기수와 관리사들의 유도에 따라 제각기 원을 그리며 몸을 풀고 있는 경주마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윽고 마권발매가 마감되었다는 신호음과 함께 안내방송이 나온다. 중계 아나운서가 경주번호와 경주마들의 이름과 기승하는 기수들의 이름을 하나씩 소개한다. 깃발을 흔드는 모습과 발주대로 들어서는 경주마들의 모습이 보인다. 희망을 걸고 기대를 걸고 베팅을 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니터 화면으로 집중 된다. 이윽고 `텅!` 하는 소리와 함께 경주마들이 게이트를 박차고 뛰쳐나간다. 홍성만은 혼돈의 세계로 빠져든다.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언젠가 꿈을 꾸었던 것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른 또 다른 자신의 시선으로 저 아래 군상들 속에서 잔뜩 웅크린 채 조바심으로 경주로를 바라보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난 꾼이 아니라고. 난 질주하는 경주마를 사랑하는 팬이라고. 한 마리의 경주마가 게이트를 박차고 경주로에서 수많은 팬과 꾼 앞에서 최선을 다해 질주 할 때까지 한 순간이 아닌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쯤은 아는 사람이라고. 거슬러 올라가 최소한 삼년 전쯤, 혹은 그 이전부터, 부마와 모마가 한 마리의 혹은 수많은 경주마를 위해 존재했었고, 최소한 이년 혹은 삼년 동안 육성되고 관리되고 또 훈련되어 경주마가 될 자질을 갖춘 모습이 되어야만 능력검사를 거쳐 비로소 경주마로 불리게 된다는 것쯤은 아는 사람이라고. 경마는 기수의 경주도 조교사의 경주도 마주의 경주도 경마전문예상가의 경주도 아닌 말의 경주라고.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역주를 하는 말에게 기대를 걸고 꿈을 걸고 희망을 거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어느 날 문득, 세상 모든 것은 다 알아도 경마만큼은 몰랐어야 했는데 경마를 알게 되었다고. 경마를 알게 되어서 슬픈 삶이 되었다고. 그래서 후회를 하고 있다고. 그래서 언젠가는 경마를 끊을 것이라고. 꼭 끊고 말 것이라고. 그럼에도 그렇게 좌절하고 후회하면서도 오늘 다시 경마장을 찾아 온 것은, 이렇게 패자가 되어 물러날 수만은 없기 때문이라고. 패자가 되어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번은, 꼭 한번은 반드시 경마에 이기고 그동안 잃었던 꿈과 희망과 돈과 삶과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찾아내고 다시는 우연이나 행운을 기대하지 않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뿐, 정말 오늘 하루만이란 다짐을 하며, 이번 한번만 꼭 한번만의 기회를 바라며 경마장을 찾는 것이라고. 그런 것이 바로 중독이라고? 그래 중독이라도 좋다. 한번만 이겨보자. 그래.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기고 말 것이다. 한번 정말 통쾌하게 이겨내고 미련 없이 경마를 버릴 것이다. 두 번 다시 경마에 그 어떤 행운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삶을 걸지도 운명을 걸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경마에 이길 것인가? 정말 경마에 이긴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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