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팬 VS 꾼 - 제1화 "중독" (5) |
"정말 우리 경마 못이기는 거여?"
마지막경주가 끝나자 착순확정의 불이 켜지기도 전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허탈감을 안은 채 서둘러 장외지점을 빠져나가 버리고 썰렁하다고 할 정도로 한산한 마권구매창구 앞에는 인기마들의 입상실패로 건져낸 행운의 고배당을 적중시킨 몇몇 사람들만이 환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백치수가 던진 말이었다. 하긴 백치수는 경마가 끝나면 습관처럼 거의 매일 그 말을 되풀이해왔다. 거의 매일을 졌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경마를 버리지 못하는 한 백치수는 매 경마일마다 반복되는 카세트테이프처럼 `정말 우리 경마 못이기는 거여?`를 되풀이해야할지도 모른다.
"기다려요. 내가 위로 술 한 잔 살 테니까."
하며 홍성만이 상의 주머니에서 마권 한 장을 꺼내자 허탈감에 빠져있던 김달오들이 눈이 둥그레졌다.
"2,6 샀었어?"
"예. 머리말 부러지기를 바라고 사복조했는데 결국은 그렇게 됐네요."
홍성만이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조용철이 나꿔채듯 홍성만의 손에서 마권을 뺏어 살펴보았다.
"얼매나 샀노? 아이고 만원이나 샀네? 그라먼 175만원이니까네 만원씩 사복조 6만원 빼고 169만원 묵었네?"
"오늘 본전 찾고 한 이십만 원 쯤 딴 셈이 되네요."
하고 홍성만이 자신만이 본전을 찾게 되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려. 우리 경마교수라도 본전 이겼으니께 다행이네. 어여 환불해와! 돈 딴사람 이 사는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들어가게!"
하며 김달오가 조용철의 등을 떠밀자
"그래. 오늘 돈 찾아본 적 한번도 ？종駭쨉？남에끼라도 어데 돈 좀 찾아보자."
하고 조용철이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듯 마권을 흔들어 보이며 큰 걸음으로 창구 쪽으로 갔다.
"어따 나도 술 한번 찐하게 사보고 싶다!"
이장수가 하루 내내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예상지를 둘둘 말더니 종이수거함에 휙 내던지며 입맛을 다셨다. 그날 그들은 홍성만이 사는 술과 고기보다 경마에 관한 끝없는 미련과 후회와 자책들을 토해내며 겨우 경마 때문에 인생마저 패배하고 있는 듯한 허탈감들을 조금씩은 털어낼 수 있었다.
그날 밤, 홍성만은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참동안을 줄담배만 피워대며 인터넷의 경마사이트들을 옮겨 다녔다. 어느 곳에서나 경주결과에 대한 원망과 자탄의 글들이 떠올라 있었다.
홍성만은 마우스를 놓고 눈을 감았다. 경마에 대해서 알만큼 알았고 터득할 만큼 터득했으며 자신의 일에 관해서 보다도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왔으므로 이제는 꼭 이길 수 있는 경마를 할 때가 되었다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던 터였는데, 최근에야 비로소 자신의 베팅기준이 결국 경마예상전문가들의 예상에 의해 좌우되어왔으며 경마예상전문가들의 예상이 적중되지 않았을 땐 그만큼 자신의 적중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연구와 노력과 선택이라는 것들이 결국은 경마예상전문가들의 경주전개추리와 예상들을 분석하고 조합해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들은 최근 몇 주 동안의 경주 결과에서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러한 증명을 얻어내기까지 홍성만은 많은 돈을 잃어야만 했다. 자신뿐 아니라 경마에 패배하며 돈을 잃어 온 대다수의 사람들도 경마예상전문가들의 예상에 의존해 베팅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홍성만은 다시 눈을 뜨고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아직 남아있는 취기와 줄담배 탓에 입안이 텁텁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홍성만은 나직이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경마입문 이후 5년 가까이 선택해왔던 경마예상지의 홈페이지를 클릭하고 여러 경마예상전문가들 중에서도 자신이 그토록 신뢰해 왔던 김아무개 경마예상전문가의 자유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존경하는 김아무개위원님...
제 경마경력은 대략 5년이 조금 넘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이런저런 여러 예상지를 구독해보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된 예상지가 귀사의 경마예상지였는데 그때 여러 경마예상전문위원들 중에 참으로 독특한 경주예상을 하시는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상지의 지면을 통해서이지만요. 바로 예상팀장을 겸하셨던 위원님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최고의 경마예상전문가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위원님을 꼽아왔습니다. 위원님 나름대로의 추론과 예상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경마가 비록 추론과 예상의 경마가 아닌 결과의 경주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위원님의 예상은 항상 제 베팅기준의 잣대였습니다. 때로는 위원님께서 하시는 추론과 전개예상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확신으로 굳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까지 마치 절대정답이라도 되는 듯 추천을 하고 설득을 하고 과시를 하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위원님께 조금씩 실망을 해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오늘은 절망감이 너무 커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