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어느 놈이 손장난을 한 거야. 모두 족보를 쥐어주고 레이스를 하게 만든 거야. 도대체 누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손장난을 할 만한 실력을 가진 놈이 없었는데? 장지점장이나 허사장이나 정교수하고 한두 번 카드해본 것도 아니고...”

순간 무표정한 얼굴에 이따금 어색한 미소를 짓기만 하던 종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고놈이야. 고놈이 나타나면서부터 뭔가 찝찝해졌단 말야.”

하고는 종원이 처음으로 이 오피스텔에 나타났던 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봉주와 서있던 종원을 처음 본 순간부터를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고놈... 처음 본 순간부터 기분 안 좋았어. 어디서 봤던 놈인 것도 같고... ”

마동식은 다시 가는 두 눈을 깜박거려대며 골똘히 생각을 했다. 봉주를 따라 방에 들어서서는

“네 분이 하시려니께 좀 빡빡하시지라. 포커는 다섯이서 해야 패쪼이고 베팅하는 맛이 나지라. 오늘부터 우리 단골 되시기로 한 분이니께 한게임 같이 해보시오.”

하며 봉주가 소개를 시키자, 의미를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박종원입니다.”

하고 처음으로 게임테이블에 앉던 모습과, 게임을 시작한지 두세 판 만에 K풀하우스를 잡고도 아무표정도 짓지 않은 채 그저

“올인입니다.”

하고 칩을 밀어 넣던 모습과, 아무리 기억해내 봐도 게임이나 판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한 레이스를 해대던 모습들을 기억해낸 후

“고놈 정말 기분 나쁘게 묘한 놈이었어.”

하고 내뱉고는

“고놈이 손장난을 했다는 건 말도 안 돼. 마지막판은 정교수가 카드를 섞었단 말야... 정교수는 카드 다 섞고 난 다음에도 몇 번이나 샤프질을 하는 사람이고... 정교수가 카드를 섞는 순서였으니까... 당연히 장지점장이 기리를 하는 순서고... 그럼 고놈이 카드에 손을 댈 이유도 시간도 없었는데...” 

하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마침내

“그래! 빌어먹을! 백만번에 한번이나 나올까말까 하는 확률에 한번 말려 든 거지 뭐.”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아무렇게나 내던졌던 윗옷을 집어 들고 미닫이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아무렇게나 벗어 내던진 옷가지와 양말들과 펼쳐진 채로 있는 이부자리를 내려다보고는 쓴 미소를 지었다. 문득 붙박이장을 겸한 거울에 비친 부스스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쫌만 기다려라! 쫌만 버티면 이 생활도 끝이다.”

하며 거울 속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실없는 미소를 지어보인 후 거울을 겸한 붙박이 장문을 열었다. 그리고 옷걸이 하나를 빼들고 옷을 걸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래에 가지런히 놓여있어야 할 꼬리표달린 쇼핑백들이 뒤죽박죽 되어있었고 어느 것은 포장지가 찢어진 채로 내던져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돈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쇼핑백들을 죄다 끌어냈다. 찢어진 포장들은 있어도 없어진 물건들은 없는 듯 했다. 돈가방만 없어진 건 틀림없었다.

“어느 놈이야...”

떨리는 턱 때문에 이빨들이 서로 맞부딪히며 따다닥! 하고 소리를 냈다. 돈만 훔쳐 간 것일까? 아니 돈만 노린 게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주변사람들 중에는 이 오피스텔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 오피스텔에 대해 말해본 적이 없었다. 아내에게도. 그런데 누가 이 오피스텔을 알아낸 걸까? 크고 작은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것에 대해 감찰부에서 은밀한 내사를 하고 있다더니 혹시 감찰부 놈들이 여길 알아냈을까? 이 모든 것들을 다 알아 간 걸까? 그렇다면 이것들을 다 놔두고 왜 돈 가방만 들고 나갔을까? 온갖 추리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한 순간 다시 종원을 생각해냈다.

“그래! 그놈이야!”

마동식은 벌떡 일어나 다시 윗옷을 걸쳐 입고 방을 나섰다.

“여기 CC-TV녹화들 하지?”

마동식은 오피스텔의 방재실에 들어서자마자 야근을 하고 있던 나이든 경비에게 마치 싸움이라도 걸려고 온 사람처럼 거친 소리를 했다. 나이든 경비는 못마땅하고 뜨악한 표정으로 마동식을 바라보았다.

“나 1538혼데! CC-TV녹화들 하냐고?”

마동식은 다시 거친 소리를 했다. 나이든 경비는

“그건 왜요?”

하며 마동식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다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