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난 차는 무조건 길이 열리는 대로 달리기만 했고 차창 밖의 시야가 깊은 어둠속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야 한적하고 황량한 벌판 위에 멈추어 섰다. 둘은 오랜 시간동안을 깊은 어둠속의 어두운 차안에 망연히 앉아만 있었다.
종원이, 지숙을 처음 만난 것은 지숙의 신변보호를 맡게 되면서였다. 이년쯤 전의 일이었다. 오명석에게 스카우트 되어 김팔봉의 조직으로 들어가게 된 종원은 애당초 싸움실력이 특출하다거나 내세울만한 특기가 있는 건달은 아니었다. 그저 위트와 재치가 가득담긴 입담으로 식구들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조직에서 내린 일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빠른 두뇌회전과 판단력으로 뒤탈생기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해냈기 때문에 김팔봉은 이내 종원을 신뢰했고 조직 간의 패싸움이나 영역간의 전쟁이 아닌 사업상의 일에 대해서는 늘 종원을 긴요하게 활용했었다. 그러던 중에 정치적인 후광을 등에 업고 막대한 사업이익권이 걸려있는 지방도시 한지역의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지숙의 아버지 나일환이 자신과 가족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사업상 상호협력을 하고 있던 김팔봉에게 자신과 가족의 신변보호를 요청하게 되어, 종원이 다른 조직원 둘과 함께 지숙의 신변보호의 임무를 맡게 되었었다. 그때 지숙은 대학무용과 이학년이었다. 종원이 신변보호임무라는 명분으로 다른 조직원들과 하는 일이란 것은, 고작해야 지숙이 눈치 채지 못하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집 앞에서부터 지숙을 뒤따르거나 강의실 밖 한곳에서 시간을 죽이며 서성이거나 무용연습실 밖의 창문 틈으로 춤추는 지숙을 훔쳐보거나 지숙이 학교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뒤를 따라다니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며칠가지 않아 종원은 그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유가 뭐야?"
종원이 그때까지 조직에서 하명한 일에 대해 한 번도 거부 한 적이 없었던 것을 잘 알고 있던 오명석은, 종원이 자신을 찾아와서 지숙의 신변보호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종원을 보며 물었다. 종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특유의 넉살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며
"아무래도 그 여자애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아서요."
했다.
"뭐야?"
하고 오명석이 다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종원은
"머지않아 그 애도 날 좋아하게 될 텐데 보디가드와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좀 웃기잖아요? 영화도 아니고."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명석은 그런 종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종원은 씩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오명석은 종원이 진심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내 지숙의 신변보호 임무는 다른 조직원에게 맡겨졌다. 지숙의 아버지 나일환이 추진했던 개발사업은 많은 사람들을 그동안의 삶의 터전으로부터 밖으로 몰아냈고 또 많은 사람들의 재산상손실을 야기 시켰기 때문에 그만큼 원성도 많았고 실제로 나일환의 염려대로 그에게는 몇 차례의 피습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김팔봉의 조직원들은 몸을 던지며 나일환을 보호했고 나일환의 사업이익에 눈독을 들이고 달려드는 다른 조직들의 개입도 철저하게 막아냈다. 그때마다 김팔봉의 조직으로는 나일환으로부터 약정보다 더 큰돈들이 입금되었고 그중 일부는 다시 조직원들의 활동비들로 뿌려졌는데 조직원들의 사기진작과 수고의 대가라는 명분이었다.
"아직도 그 앨 좋아할 것 같냐?"
조직원들과 이차삼차에 걸쳐 벌인 술자리가 끝난 후 규태와 함께 차에 오른 오명석이 불쑥 물었다. 종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슨 소리야?"
규태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둘을 번갈아보았다.
"저 놈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데.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좋아하게 될 여자가 생겼다는 게 맞겠네."
하고 오명석이 씩 미소를 지었다. 규태가 흘낏 종원을 보며 
"누구야?"
하고 물었다. 종원이 규태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얘기는 해봤어?"
오명석이 다시 물었다. 종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임마!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와 서로 교감이 있어야 되는 거지. 저 혼자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게 아냐. 그건 지랄하는 거지."
오명석이 핀잔 투로 얘기하자
"안 그래도 말 할 참이야."
하고 종원이 단호하게 대답하며 눈을 치켜떠보였다. 오명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규태는 그런 오명석과 종원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날 종원은 지숙의 학교로 찾아가 하루 종일 캠퍼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수업과 무용연습을 마친 지숙이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교문을 나서자 그녀의 뒤를 바싹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