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이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는 차안이었다. 지숙이 곁에 있었던 것 같은데 하고 지숙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었다. 잔뜩 웅크린 몸을 일으켜 황량한 벌판 위에 세워져있는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땐 멀리서부터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른 새벽의 찬 공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자 잔뜩 웅크려 굳어버린 몸을 떨쳐내고 담배를 꺼내 피워 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숙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지숙의 모습은 없었다. 잠든 동안,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다 살며시 차에서 빠져나갔나보다고 생각했다. 종원이, 이제는 지숙을 놓아줄 때도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담배연기를 흠뻑 들이마시고는 마치 떠나는 지숙을 바라보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황량한 벌판 저쪽을 향해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자 담배연기들은 이내 새벽안개와 바람에 뒤섞여 허공으로 흩뿌려졌었다. 종원은 흐트러져 흔적조차 없어져가는 담배연기들처럼 그렇게 자신의 생에서 이제 지숙을 놓아주기로 했다.
종원은 서울 쪽으로 돌아오다 서울진입직전의 제법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일만한 길 한곳에 차를 세워두고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차는 벌써 도난신고가 되어있을 것이었고 길 한가운데 내버려진 차가 며칠 동안 움직이지 않는다면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신고가 되어 곧 주인에게 되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종원은 마동식이 근무하는 경찰서로 가 그 앞을 배회했었다. 서울로 오는 동안 버스 안에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했었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막상 마동식과 맞부딪혀 보자고만 작정하고 무작정 경찰서 앞까지 갔었다. 그러나 벌써 세 시간 가까이를 경찰서주위를 맴돌며 씨팔! 씨팔! 하고 욕설만 내뱉고 있었다.
"씨팔! 도대체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거야? 이 새끼가 오리발만 내밀고 오히려 날 잡아넣어버리면 모든 게 꽝되는 거 아냐?"
하고 투덜대던 종원은 피자점 앞에 멈춰 섰었다. 언젠가, 폭약을 장착시킨 피자를 경찰서로 배달을 시켜 악질경찰을 응징하는 장면이 있었던 영화가 생각났었다.
"그래. 영화처럼 시작하는 거야!"
하고는 피자점으로 들어가 피자를 주문했었다. 피자는 곧 경찰서 안으로 배달되어갔었다. 
마동식이 자신과 규태와의 사이에 있었던 밀약과 거래내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은근히 알아내기 위해 규태의 애인 조영숙을 취조한 후, 조영숙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는 규태가 넘겨준 거액을 챙겨  "그래. 이제 조용히 정리를 하고 뜨는 거야."
하며 스스로 흡족해 있을 때 형사하나가 포장된 피자를 들고 와
"피자 배달시켰었어요?"
하며 피자를 내밀어 보였었다.
"피자...?"
하고 마동식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다른 형사가
"누가 반장님 앞으로 피자를 보낸 모양이네? 반장님 여자 생겼어요?"
하고 히죽거리며 거들자 마동식은 천천히 몸을 기울여  피자포장을 뜯어 살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었다.
"나한테 피자 보낼 사람이 어딨어? 자네들 중에 누군가가 장난치는 거겠지."
"누구든지 간에 이런 장난 자주했으면 좋겠네요. 덕분에 우리가 잘 먹게요."
"정말 안 드시겠습니까?"
"느끼해서 싫다니까?"
마동식이 짜증 투로 내뱉자 두 형사는
"그럼 우리가 대신해서 잘 먹겠습니다."
하고는 피자 포장을 들고 가버렸고 마동식은 그들의 뒷모습을 멀건이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었다. 그때 종원이 마동식에게 전화를 걸어
"피자 잘 받았습니까?"
하고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었다. 마동식이
"이봐요. 여기가 어딘지 알아? 그리고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에요. 장난치지 말아요."
하고 목소리에 잔뜩 힘을 넣자 종원은 다시
"거기가 수사3과이고 지금 전화 받으시는 분이 마동식반장님이라는 거 잘 압니다."
하고는 마치 잔뜩 긴장한 마동식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나 한 것처럼 
"왜? 긴장되십니까?"
했었다. 마동식이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누구신데 이런 장난 전화를 하십니까?"
했을 때 종원은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닙니다."
하고 쇳소리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었다. 마동식은 한동안 망연히 수화기를 들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