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핸드폰을 다시 양복속주머니에 쑤셔 넣고 4경주의 배당률을 표기해내고 있는 배당판을 흘낏 바라본다.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배당률들이 물결처럼 흘러내린다. 전광판의 배당률과 예상지들을 견주어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저마다의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이나 매점들을 찾아 이동을 하기 시작한다. 경주중에는 마치 망부석이나 석고상들처럼 굳어져 경주로만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도 붙어있던 자리에서 발을 떼고 걸음들을 옮겨간다.
"이거 밥값이나 하고 밥을 먹던지 해야 하는 거 아냐?"
한 사내가 예상지를 둘둘 말아 겨드랑이에 끼우며 떨떠름한 얼굴로 내뱉자 함께 가던 사내가
"언제 점심값 만들어서 밥 사먹었어? 그냥 먹어두자고. 먹는 게 남는 거라니까. 몸은 안 망가져야지?"
하며 예상지를 말아 쥔 손을 휘저어 보이며 앞서 간다. 예상지를 겨드랑이에 낀 사내는
"그래. 먹자! 어차피 말밥 값으로 다 바칠 돈..."
하며 푸념처럼 내뱉고는 그 뒤를 따른다. 종원도 무심코 그들 뒤를 따라 복도의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창구 앞이 썰렁하구만."
"저걸 맞춘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마권구매창구 앞은 사내들의 말처럼 3경주를 적중시킨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듯 복도의 모니터아래 운집해있던 사람들은 창구 안으로 마권을 밀어 넣거나 창구 앞에 서서 환급받은 돈들을 세어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신기한 표정들로 바라보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복승식배당이 1355배이며 쌍승식배당이 7482배인 경마경주를 적중시킨다는 것이 어디 경주전개예상능력으로 될 일이겠는가?
"그래도 맞은 사람이 있긴 있는 모양이네."
"누군가가 샀으니까 배당이 생겼겠지."
"저 사람들 얼마나 샀을까?"
"저런 배당에 얼마나 샀겠어? 기껏해야 천원씩이나 샀겠지."
"천원이라도 얼마야? 복승만 해도 130만원이 넘고 쌍승으로 샀으면 700만원이 넘는데"
"이런 경주 맞추는 거 하나도 좋아할 것 없어.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주를 맞춘 것 때문에 운만 바라보고 매경주마다 엉뚱한 말에다 돈 처박다보면 결국엔 돈 더 잃을 건데 뭐. 어디 이런 경주가 매번 터지나?"
"이런 사연 저런 사연 다 생기면서 말밥만 주는 거지."
"우리가 말밥 안주면 말들 다 굶어죽잖아?"
"그러게 우리도 밥 먹어 가면서 말밥 챙겨주든지 하자고."
사내들은 연신 혼잣말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식당 앞으로 간다. 복도에 줄줄이 붙어있는 식당들은 점심시간이라 제법 사람들로 붐빈다. 두 사내는 조금은 한산해 보이는 한 식당 안으로 들어가 소리 나게 의자를 잡아당겨 풀썩 주저앉는다. 종원은 두 사내를 지나쳐 복도를 가로질러 예시장쪽의 출구로 나간다. 훅-하고 더운 바람이 몰려와 종원의 온몸을 휘감는다. 점심시간대의 관람대 뒤편은 그렇게 북적대고 소란스럽던 관람대 안 곳곳의 분위기와는 달리 비교적 한가롭고 여유롭게 보인다. 예시장에는 경주마들도 관리사들도 보이지 않고 플라스틱 계단에는 몇몇 사람들만이 듬성듬성 자리에 앉아 따가운 햇살을 받아내며 예상지들을 뒤적이고 있다. 종원은 예시장을 지나쳐 분수대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마동식의 차는 일산의 오피스텔단지로 들어섰다. 종원도 언젠가 한번은 와봤던 일산이었지만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그때는 황무지처럼 산업용쓰레기와 잡초들만 무성했던 곳이 어느새 잘 조성된 오피스텔상가지역으로 변모되어있었고 한창 공사 중인 곳도 있었다. 마동식의 차가 한 오피스텔의 지하주차장 안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더니 종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종원은 길 한곳에 차를 세우고 마동식의 차가 들어간 오피스텔을 올려다보았다. 분양과 임대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과 입주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으로 봐서 입주가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는 듯 했다. 종원은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손이 닿았을만한 곳을 모두 닦아내고 차에서 나와 오피스텔 앞 편의점의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종원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다. 마동식이 경찰서에서 나와 처음 찾아갔던 남가좌동은 그가 아무렇게나 차를 주차해두고 또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나왔던 것을 봐서 그곳은 그의 집이었을 테고, 이곳에는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알지 못하고 또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한 마동식과 당장 맞닥트리는 일에는 신중 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오피스텔 안에서 사내 둘이 나오더니 편의점을 향해 길을 건넜다. 종원은 흘낏 그들을 보다 멈칫했다. 사내들도 뭔가 재미있다는 듯 킥킥대며 길을 건너다 그 중 한 사내가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종원과 시선이 마주치자 멈칫하더니 종원을 빤히 바라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