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이, 편의점에서 무언가 한 아름 사들고 나와 최영호에게 들게 하고 앞서 걷는 봉주를 따라 들어간 오피스텔은 15층의 신축건물이었는데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하는 건물답게 건물전체에서 새 건물 특유의 냄새를 뿜어냈고 곳곳에 공사잔해들이 쌓여져 아직도 크고 작은 보수공사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8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봉주는 ''ㄷ''자 형식으로 구부려진 긴 복도를 앞서 걸었다.
"요즘엔 정말 돈만 있으면 살기 좋아졌다니까요. 오피스텔도 인자 옛날같이 방만 떵그라니 있는 거이 아니라 에어콘에다가 냉장고 드럼세탁기 식기세척기들이 모다 옵션인가 뭔가 되어가지고 정말 입을 옷하고 덥고 잘 이불하고 베게만 들고 들어오먼 되게 되얐습디다."
봉주는 특유의 친근하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저 맨 끝 쪽 네 방을 쓰고 있구만이라."
하고는 뽐내는 듯한 얼굴로 말하고는 종원이
"비싸지 않아?"
하고 묻자
"임대료라우? 생각보다 쌉디다."
하고 대답했다. 복도의 맨 끝에 다다르자 복도를 마주하고 앞쪽의 두 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방안에는 건장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청년들이 잘 꾸며진 응접용가구들과 소파들에 앉아있거나 서성대고 있다가 들어서는 봉주와 종원을 보고 머뭇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사들 해라. 박종원선배다."
하고 봉주가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슬리퍼로 바꿔 신으며 툭 내뱉자 청년들은 일제히 허리를 꺾었다. 종원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뒤따르던 최영호가 종원앞으로 가지런히 슬리퍼를 놓았다. 종원이 최영호에게 다시 멋쩍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 해보이며 슬리퍼로 갈아 신자 봉주는 방향을 바꿔 맞은편 방으로 종원을 안내했다. 맞은편 방에도 서너명의 건장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를 한 청년들이 응접용가구들에 앉아 있다가 들어서는 봉주와 종원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인사들 해라. 박종원선배다."
봉주가 다시 툭 내뱉자 청년들이 건너편 방의 청년들과 같은 표정으로 일제히 허리를 꺾었다. 종원은 다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봉주는 종원을 돌아보며 들어오라는 눈짓을 하고는 방안으로 앞서 들어갔다. 종원은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봉주를 뒤따랐다. 오피스텔 안은 복층구조로 꾸며져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카페트가 깔린 계단이 한곳에 있었고 봉주가 자랑한대로 에어콘 냉장고 드럼세탁기들이 실내구조에 적합하게 붙박이 형태로 배치되어있었다. 종원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데
"이게 누구냐? 종원이 아냐?"
하고 오상봉이 위층의 난간에서 고개를 내밀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종원도 오상봉을 보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편의점 앞에서 만났구만이라."
하고 봉주가 건들거리며 위층의 계단을 올라갔다.
"어서 올라와! 그렇잖아도 네 얘기 들려와서 궁금했었는데."
하며 손짓을 했다. 종원은 봉주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복층구조로 꾸며진 위층은 아래에서 바라보고 짐작해낼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커보였고 천장의 높이도 보통 키의 사람이 서있어도 충분할 만큼 높았다. 위층에도 붙박이형태의 냉장고와 장식장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종원이 다가가자 소파에 앉아있던 오상봉이 손을 내밀었다.
"괜찮은 거냐?"
"예."
종원은 오상봉이 손짓하는 대로 그 앞에 앉았고 종원의 곁에 봉주가 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오상봉이 담배를 피워 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자
"얘기하자면 길죠." 
하며 종원은 쓴 미소를 지었다.
셋은, 지난날 한 조직 내에서 함께 활동했던 때의 일화들과 그 후의 제각기 다른 행적들에 대해 한참동안을 떠들어대다가 종원이 규태 때문에 곤경에 처해지게 된 정황과 규태의 죽음에 대한 얘기에 이르러서는 숙연해졌다.
"사고를 쳤으먼 끝을 봤어야제. 죽긴 왜죽어."
상구가 자탄조로 소리를 높이자
"규태 걔... 나한테도 멀리 달아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는데."
하며 오상봉이 고개를 떨구더니
"영숙이는 다시 만나봤냐?"
하고 규태의 애인 영숙에 대해 물었다.
"아뇨. 해야 할 일이 남아서 아직..."
종원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