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
오상봉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종원이 특유의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이자 그런 종원을 빤히 바라보던 오상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네놈이 누가 묻는다고 하고 싶지 않은 대답해줄 놈이냐?"
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 여긴 웬일이세요? 양재동은요?"
"양재동 문 닫은 게 언젠데?"
"왜? 무슨 일 있었어요?"
"이젠 주택가에선 어려워. 드나드는 사람들 많아지면 남의 눈에 띄기 마련이고 민원도 생기고 그만큼 위험부담도 따르고 경비도 많이 들고"
오상봉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여그 안 좋소? 네 방 모두 회사 명의로 해놨응께 무신 회산갑다 생각들 헐 테고 드나들기 자유로와서 좋고."
봉주가 호들갑을 떨며 거들었다.
한때 다세대주택에나 빌라 또는 아파트나 상가건물에 은밀하게 자리 잡았던 소위 ''하우스''들이, 집주변을 서성이는 건달들로 보이는 사내들과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다거나, 낯선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 신경이 쓰인다거나, 주차문제 때문에 시비가 벌어지는 등의 각종 민원발생과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들의 급습에 걸려 입지가 좁아지자 서울외각의 상가빌딩이나 오피스텔들로 옮겨가기 시작했는데 오상봉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상봉에게 일산이라는 지역은 낯선 곳이었기에 그가 오래전부터 연을 갖고 있었던 고양의 한 조직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들의 묵인과 은밀한 배려 하에 호수공원 뒤편으로 조성된 오피스텔단지에서 새롭게 시작한지 이제 겨우 보름정도 되었다. 오상봉은 15층 오피스텔의 8층 복도 끝 쪽의 네 방을 한꺼번에 임대하여 네 방 입구마다 유령회사의 명판을 붙여두고, 앞쪽의 두 방은 항시 문을 열어두고 조직원들이 출입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관리하도록 했으며 복도 끝에 있는 두 방은 조직원들의 안내 하에 게임을 하는 사람들만 출입을 허용했다. 같은 층의 같은 복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조차도 복도 맨 끝 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또 모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탓에 복도 끝을 오갈 이유도 없는 탓이기도 해서 그곳이 설마 ''하우스''일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경비실이라는 곳도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초소하나가 전부였고 곳곳에 설치된 CC-TV도 그냥 형식적인 장치일 뿐이어서 그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항시 자유로웠다. 오상봉의 ''하우스''는, 예전의 양재동단골들이 한 번씩 찾아와 게임을 벌이고 간 후 비록 이동의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하더라도 은밀하게 포커게임을 즐기기에 좋다는 이유로 다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내 자리를 잡아갔다. 사실 서울에서 이곳을 찾아오기는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강변북로를 달려 자유로로 진입하자마자 곧장 일산신시가지로 빠져들면 바로 호수공원이 있었고 연신 신축되고 있는 오피스텔단지로 찾아 올 수 있었다. 단지 내 곳곳에 주차구역이 있었고 대형주차장도 있어서 주차하기에 어려움도 없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도 좋았다.
"한게임 해 볼래?"
오상구가 종원에게 피식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나?"
하며 종원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데
"해보쇼? 잡기허먼 한 잡기 하잖소?"
하고 봉주가 부추겼다. 종원은 다시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원래 식구들을 게임에 안 붙이는 게 룰이지만 네가 딱히 내식구라고 할 수도 없고..."
오상구가 혼잣말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게임하고 하우스분위기나 손님들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의견도 들어볼 수 있을 테고."
하며 종원을 보았다. 종원은 잠시 망설였다. 오랜만에 예전에 한 식구였던 오상봉과 봉주를 만난 것도 좋았고 오상봉이 새롭게 시작한 하우스에서 게임이나 즐기며 복잡하게 얽힌 일들을 잊어버리고도 싶었지만, 그러나 지금 자신은 자신과 규태와 마동식과 김팔봉의 조직과 백태삼의 조직사이에 얽힌 문제들을 풀어내기 위해 마동식을 뒤쫓아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쳐냈다. 
"사실은 누굴 좀 뒤따라왔거든요?"
"누군데?"
하고 오상봉이 물었다.
"여자가 아니라는디 종원형이 일산까지 뒤쫓은 거 보먼 쪼께 복잡헌 일인갑소."
하고 봉주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