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깡마른 남자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이번에는 오히려 자신이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 그저 고개를 떨군 채 특유의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테이블 가운데에 내던져져 있는 칩들을 자신의 앞으로 쓸어다 놓았다. 자신의 칩을 빼더라도 이천만원은 훨씬 넘어 보이는 액수의 칩들이 들어왔다. 뒤에 서있던 봉주가 나직이 헛기침을 했다. 애써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헛기침 속에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배어있었다. 반백의 남자가 각자의 앞에 흐트러져있는 카드들을 쓸어 모아 뒤섞기 시작하며
"새 손님이 올인 아니었으면 엄청 커질 판이었구만. 카탄줄도 모르고 Q 플래시로 엄청 되치기 했거나 카타가 때리고 나왔어도 당연히 때린 만큼은 콜을 텐데... "
하며 괜히 들뜬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러게!"
하고 키 작은 남자가 끼어들며
"거 재미난 구경거리 놓쳤네."
하고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거 허사장은 누구 신세 조지길 바란 거요?"
반백의 남자는 발끈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새 손님은 운도 참 좋으쇼. 들어 오시자마자 카타 떠서 기선제압도 하시고 판돈도 넉넉해져서 좋고..."
하고는 이내 잔뜩 부러운 표정으로
"잘해보쇼. 이런 것도 다 타고난 복인가 봅디다. 판을 돌다보면 타야 언제든지 뜰 수 있는 거지만 상대들이 레이스를 잘해줘야 지금처럼 한몫 잡는 거지. 안 그래요?"
하고 마치 동의를 구하듯 종원을 보며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종원이
"저 복 많지 않은 놈인데... 이번에 운이 좋았나봅니다."
하자
"카집 못 떴으면 들어서자마자 올인 날 뻔 했었구만."
하고 키 작은 남자가 다시 끼어들며 마치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라도 한 사람처럼
"지금부터 잘 해야지. 첫 끝빨 좋았던 사람치고 판 끝낼 때 보면 돈 딴 사람 못 봤으니까."
하고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종원은 다시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으로 키 작은 남자의 떨떠름한 반응에 대신했다. 종원의 판돈 오백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런 적지 않은 돈이 단 한판에 올인 될 정도라면, 그것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콜 베팅만으로 올인 될 정도라면, 이 방안에서 벌어지는 게임들은 결코 작은 규모의 게임이 아닐게 분명했다. 이런 작지 않은 게임을 마동식이 하고 있다. 어디서 이만 한 돈이 나왔을까? 종원은 흘낏 마동식을 보았다. 그동안 마동식과 깡마른 남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동식은 지금 반백의 남자의 말처럼 종원이 올인이 되어 판돈이 더 커지지 않아 자신이 그만큼 덜 잃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왜 하필 자신이 7 풀하우스를 잡을 때 종원이 K 풀하우스를 잡았는지 불쾌해 하고 있을지도.
"정교수는 뭐였소?"
마동식이 작은 눈을 치켜 올리며 깡마른 남자에게 물었다. 깡마른 남자는 마동식을 흘낏 보고는 고개를 떨구더니
"뻥까 한번 쳐 본겁니다."
하고 다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뻥까가 콜을 해? 이거 왜이래?"
마동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게 삼백에다가 사백 콜 했으니 기본베팅들까지 합치면 칠백이 넘는 돈인데 아무려면 뻥까를 했을려구?"
키 작은 남자가 거들었다.
"뻥까 치려면 되빠꾸했을 텐데 콜만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잖아? 카드 까보면 뻔히 들어날 건데"
반백의 남자도 고개를 갸웃했다.
"재미삼아 그래본 겁니다."
깡마른 남자는 다시 의미를 알 수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키 작은 남자가
"재미삼아? 정교수 돈 많네? 재미삼아 칠백씩이나 내던지고? 그럼 나 나중에 집 뜰 때 다시 이번처럼 키워 줘."
하고 다시 떨떠름한 얼굴을 해보이자
"그러죠."
하고 깡마른 남자는 다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이번 판 컸네."
하고 반백의 남자가 아쉬움이 가득담긴 한숨을 내쉬며 잘 섞은 카드를 키 작은 남자 앞으로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