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시관이 하얀 시트를 벗겨내자 처참한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는 규태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을 내려다보던 영숙이 오열을 토해냈다. 그 곁에서 거만스런 표정으로 서있던 마동식이 검시관에게 눈짓을 했다. 검시관이 다시 시트를 덮었다. 마동식은 영숙을 조사실로 데리고 갔다. 조사실로 옮겨 간 영숙은 한참동안을 망연한 시선을 떨어트린 채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만 있었고 마동식은 그런 영숙을 흘낏흘낏 곁눈질로 살피며 괜스레 거만스런 몸짓으로 조사실 안을 서성대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김규태가... 무슨 말 한 것 없습니까?"
영숙은 대답이 없었다. 
"아무 얘기 없었어요?"
마동식이 다그치듯 다시 물었다.
"없었어요."
영숙이 마지못해 들릴 듯 말 듯 나직이 대답했다. 마동식이
"큰돈을 빼돌린 것 때문에 보복을 당했다는데..."
하며 다시 영숙의 눈치를 살피자  
"큰돈을 빼돌린 사람이 그런 곳에 숨어있었겠어요?"
하며 영숙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마동식은 그런 영숙을 한참동안 노려보듯 바라보더니 괜스레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아무 얘기가 없었다 이거죠?"
하고 확인이라도 하듯 되묻고는 다시 영숙의 표정을 살폈다. 영숙은 그저 고개를 떨어트린 채 섧게 울어대기만 했다. 그런 영숙을 한참동안 내려다보던 마동식이, 영숙이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듯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셔도 좋습니다."
했다. 영숙이 눈물을 훔쳐내며 
"장례는...?"
하고 묻자 마동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부검 끝나는 대로 연락드릴 겁니다. 사인이야 뻔한 거지만 절차라는 게 있어서요."
했다. 영숙은 잠시 망설이더니 뭔가 얘기를 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내젓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힘없는 걸음으로 조사실을 나섰다. 마동식은 여전히 거만스런 표정으로 영숙의 뒷모습을 지켜보더니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여 ''훅-''하고 연기를 뱉어냈다. 영숙은 정말 자신과 규태의 밀약과 흥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규태가 죽어버린 지금, 자신과 규태사이에서 오갔던 밀약과 흥정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만족의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은 거액의 밀수거래현장을 덮쳐 범인들을 체포하는데 큰 성과를 얻어냈을 뿐 아니라 밀수거래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거액을 규태가 빼돌려 자신에게 넘겨줌으로써 거액까지 생겼다. 물론 그 돈은 규태를 새 신분을 만들어주고 국외로 도피시켜 주겠다는 밀약을 한 대가로 받아낸 돈이지만, 지금 규태는 이 세상에 없다. 사실 마동식으로서는, 규태의 새 신분을 만들어 내거나 국외로 도피를 시켜 줄 수 있는 위치도 못되거니와 애당초 그럴 생각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전, 폭력조직이 연계된 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던 규태란 놈이, 자신이 이번에 제법 큰 규모의 밀수거래의 운반책을 맡게 되었는데 이번 일을 끝으로 조직의 일에서 손을 씻고 자신의 애인과 함께 국외로 도피하고 싶다며, 거래에 관한 모든 정보제공을 해주고 거래에 사용 될 물건 값이었던 거액을 모두 넘겨주면, 새 신분과 국외로 도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느냐는 제의를 해오자, 가뜩이나 크고 작은 비리들에 연루된 의혹들 때문에 감찰부서로부터 은밀한 내사를 받고 있던 터라, 이런 결코 작지 않은 밀수사건 하나를 해결함으로써 그런 의혹과 내사들을 일시에 잠재우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인사고과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었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승진발령을 받을 수도 있게 될 테고 크고 작은 비리들에 연루되어 있는 이곳을 떠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마동식으로서는, 규태가 그러한 제의를 해오자 규태의 새 신분문제나 국외로의 도피문제 등은 이러저러한 핑계를 둘러대며 시간을 끈 후 차후에 적당한 조취를 취하자는 심산으로 쾌히 장담을 했었는데, 규태는 마동식이 호언장담을 하자 그의 약속을 믿기로 하고 거액의 밀수거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마동식은 규태의 사전정보제공에 따라 밀수조직현장을 급습할 수 있었으며 규태가 빼돌린 거액까지도 건네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규태가 누군가에 의해, 물로 그것은 규태가 몸담고 있던 조직이거나 규태의 배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상대조직에서 주도한 살인이 틀림없을 테지만, 아무튼 규태가 살해를 당해 죽음으로써 자신에게 남겨질 뻔 했던 규태의 처리에 관한 골치 아픈 문제들이 자연히 해소되었으며 지금 자신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거액의 돈만이 남게 되었다. 그 돈은 삼십년 넘게 근무해온 경찰생활을 그만두고서 받아낼 수 있는 퇴직금보다 더 많은 돈이었다. 마동식은, 규태와 자신의 은밀한 밀약과 거래에 대한 내용은 물론 규태에게서 자신에게 거액이 건네졌다는 사실을 영숙이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영숙을 추궁하여보았으나 영숙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대답을 했고 그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마동식은 조사실을 나가는 영숙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