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다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결코 그 말에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 전적으로 부정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교수는 다시
“세 가지 경우 중 첫 번째는 머리말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한 경우들이고, 두 번째는 쏘는 말이 어느 말이냐의 경우이고 세 번째는 빼는 말이 어느 말이냐는 경우죠. 이런 쏘스의 근원지를 마주들이나 조교사나 기수들에게서 나온 거라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잘 봐줘야 예상전문가들에게서 나온 고급정보들일 뿐이죠. 그런데 그것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게 경마와 카드가 다른 점이죠. 경마는 내 스스로 하는 게임이 아니라 말과 기수들이 벌이는 게임을 맞추어내는 게임이거든요? 그래서 나도 경마만큼은 자신이 없어요.”
하고는 잠시 머뭇하더니
“사실 오늘 박형을 여기로 모신 것은...”
하고 흘깃 종원의 눈치를 살피고는
“좀 큰돈을 만들어야 할 일이 있어서 한번 승부를 벌여야 하는데 가능할지 봐달라는 겁니다.”
했다. 종원은 이내
“제가 뭘 아는 게 있어야죠?”
하며 정교수를 보았다. 정교수는 다시
“제게 오는 쏘스 중에 하나가 마주 쪽에서 나오는 건데 그 말이 오늘 승부를 한답니다. 승부만 한다면 배당이 나올 말이죠. 그래서 그 말에 붙여먹을 수 있는 말에 승부를 해 보려는데 박형 신세를 한 번 지려고 합니다.”
했다. 종원은 대답대신 묵묵히 있었다. 정교수는 그런 종원을 다시 흘낏 보고는
“6경주의 10번 말입니다.”
했다. 종원은 여전히 묵묵히만 있었다. 정교수는 다시
“6경주 머리말이 4번이니 4번에 백을 때릴 겁니다. 그리고 내가 보는 말이 9번말이니 9번말에 이백 승부를 할 겁니다. 머리하고 들어와도 아무리 못해도 십배는 족히 넘을 거고 9번하고 들어오면 이삼십 배는 겁니다. 박형의 게임감각으로 한 마리 빼주시면 10번하고 이백 승부하겠습니다. 예상지 좀 살펴봐 주시죠.”
하고는 예상지 둘을 종원 앞으로 펼쳐보였다. 종원은 규태를 따라 처음 경마장을 갔던 때를 생각해내고는 이내 쓴 미소를 지어보이며
“정말 경마 잘 모릅니다.”
했다.
“박형의 게임감각을 믿어보려는 겁니다.”
정교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머뭇하다가 다시
“솔직히 말씀드리죠. 빚이 좀 있습니다. 좀 큰돈인데... 사실 하우스에서 만들어보려고 했었습니다만 그 돈 만들기 까지는 시간도 촉박하고...”
하며 종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원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흘낏 봉주를 보았다. 봉주는 종원과 시선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사실 봉주씨에게 제가 부탁을 했었습니다.”
정교수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봉주는 다시 어깨를 으쓱하고는
“종원형이 경마도 끝내줬던 거 세형이 헌티 들어서 알았지라. 그래서 정교수가 요즘 돈 땜시 쪼께 곤란 헌 일이 있어허는 것 같아서 종원형허고 상의혀보라고 했구만이라. 규태형도 도와줬었다믄서라? 여그 정교수님도 쪼께 도와주시오. 신세지먼 안 잊을 분이구만이라.”
했다.
“도와주십시오.”
정교수가 다시 한 번 나직이 부탁을 했다. 종원은 한참동안을 두 눈만 껌벅인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마지못해 예상지의 6경주를 펼쳐들었다. 예상지에 수록된 6경주 출주마들의 자료들은 한 눈에 봐도 금세 우열이 분별되는 경주편성이었다.
“너무 뻔한 경주 같죠?”
정교수가 물었다.
“그러네요.”
종원이 대답했다.
“10번... 되겠습니까?”
“글쎄요...”
“조교는 엄청 시켰거든요.”
“강조교를 시켰다고 해서 말의 능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순 없을 텐데요.”
“1400입니다. 1800까지 뛰었던 말입니다.”
“단거리와 장거리의 중간이라 말의 능력비교가 제일 어려운 거리죠.”
“워낙 선행력 좋은 말들이 많아져서 요즘엔 선행을 나서지는 못하지만 예전엔 순발력도 있었던 말입니다.”
“이번 편성에도 선행마들이 많은데요? 더욱이 자리도 너무 바깥이라.”
“두세 번째만 따라붙어도 끝까지 버틸 힘은 있는 놈입니다.”
봉주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