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주의 마권발매마감을 알리는 멘트가 들려왔다. 모니터 화면에 발주대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들이 보여졌다.
“이번 경주에 4번이 쏜다는 쏘스가 들어왔었어요.”
정교수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서 4번 놓고 샀소?”
봉주가 물었다. 정교수는 봉주에게서의 시선을 종원에게 돌리며
“나중에 승부 할 6경주 소스하고 한집에서 나오는 건데 왠지 첫 경주편성으로는 믿음이 덜 가서 4번 놓고 머리하고 1번에 한 장씩만 사봤습니다.”
하며 종원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종원은 잠시 1경주의 편성을 살펴보고는 배당을 살폈다. 정교수가 1장씩을 샀다는 4번마와 우승유력마로 인정되는 8번마와의 복승식배당은 12.2배였고 4번마와 1번마의 복승식배당은 24.6배나 되었다. 그만큼 8번마의 입상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1번은 잘 보신 것 같네요.”
종원이 그렇게 말하자
“박형도 그렇게 보셨습니까?”
하고 정교수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게이트 맨 안쪽에 있으니 자리 잡는데 아무래도 유리하겠죠?”
했다. 종원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전 오히려 이번 경주에서는 선입 승부를 할 것 같네요.”
하자 정교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선입승부요? 전형적인 도주형 선행말이 되어나서 선행을 받지 못하면 1000미터경주에서도 이내 자멸하고 말던데 1200경주에서 선입승부가 되겠습니까?”
했다. 종원은 다시
“조교내용을 보면 끊임없이 지구력훈련에 치중을 했어요. 제가 경마경력이 그리 많지 않지만 전에 이와 비슷한 말을 본 적이 있는데 도주악벽이라고 하나요? 아무튼 지나치게 앞서나가려고만 하는 말을 오히려 도주악벽을 고쳐 선입형으로 질주습성을 고친 후에 더 좋은 경주능력을 끌어낸 경우를 봤었거든요? 바로 그 조교사의 마방이네요.”
했다. 정교수는 그런 종원을 보고 감탄의 눈빛을 띄며
“그런 것 까지 보십니까?”
하고는
“역시 오형이나 상구씨가 왜 박형을 어떤 게임이든 승부가 걸린 게임에서는 절대 지는 일이 없다며 최고의 게임플레이어라고 극찬을 하는지 알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과찬입니다.”
종원은 특유의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두 양반이 무신 야글 하는지 도통 모르겄소.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요.” 
봉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첫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신호소리가 들려오고 경주마들이 발주대를 박차고 질주해나가기 시작했다. 장내의 모든 시선들이 일제히 모니터들에 쏠렸고 아나운서의 긴박한 중계소리가 들려왔다. 종원의 예상대로 1번마는 선행에 나서지 않았고 우승유력마로 지목된 8번마가 다른 경주마들과의 차이를 크게 벌리며 앞서 나갔다. 장내의 이곳저곳에서 그러면 그렇지 하는 투의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8번마는 우승유력마답게 경쾌한 발놀림으로 쭉쭉 앞으로 뻗어나갔고 그 뒤를 2마신쯤 뒤쳐져서 다른 선행형경주마들이 자리를 잡으며 8번마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아까 4번 놓고 샀다고 했소? 4번은 보이지도 않는디?”
봉주가 모니터 속의 경주마들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말하는 순간 4번마가 화면 속의 선두 그룹으로 끼어들더니 이내 다른 선행그룹경주마들을 재치며 뛰쳐나가 8번마의 뒤를 바싹 뒤쫓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다시
“어어- 저거 몇 번이여?”
“4번 아녀?”
“뭐여? 4번이 쏘는 거여?”
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4번마는 이내 8번마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코너를 돈 후 결승 주로에서도 지치지 않은 탄력으로 쭉쭉 앞으로 뻗어 나갔고 누가보아도 이번 경주는 그렇게 두 마필의 각축으로 그대로 끝날 경주처럼 보였다.
“뭐야? 4,8로 끝났네?”
“그러게? 배당도 짭짤한데?”
“아까 누가 4번 간다고 연신 누구랑 통화하더구만 그 말 들었어야 했네.”
여기저기서 4번마와 8번마의 동반 입상을 인정하는 듯한 소리들이 터져 나올 무렵에 4번마가 한순간 페이스를 오버한 듯 급격하게 발놀림이 무뎌지며 외각으로 급히 사행을 하더니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시 어어-하는 함성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고 4번마는 제자리걸음만을 하는 듯 한데 게이트 가장 안쪽에서 편안하게 코너를 돌았던 1번마가 자신을 앞서가는 경주마들의 안쪽으로 파고들며 힘찬 질주를 해내기 시작했다.